논문 : 시조사의 편성 과정과 최남선의 시가 인식

저작시기 2012.01 |등록일 2012.11.27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26페이지 | 가격 6,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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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수록지정보 : 민족문학사연구 / 49권 / 40 ~ 65 페이지
저자명 : 서철원 ( Cheol Won Seo )

없음

한국어 초록

이 논문은 시조사의 편성 과정과 최남선의 시가 인식 사이의 관련 양상을 고찰함으로써 고전시가 연구에서 그가 남긴 유산과 과제를 돌이켜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시조사의 편성에 대한 인식은 현존 최초의 가집인 18세기의 『청구영언』, 특히 이삭대엽 부분에서 역사적 전개와 작가의 신분을 아울러 고려하여 시조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촉발되었다. 『청구영언』의 분류에서 양반문학에 비하면 주변부였을 중인과 기녀의 작품을 시가사의 특이점처럼 내세운 점은 선구적이라 할 만하다. 『청구영언』은 『시경』의 권위에 빗대어 시조의 권위를 높이고자 한 발상을 보이는데, 이러한 경향은 19세기의 『가곡원류』에 이르러 더욱 심화한다. 『가곡원류』는 음악적 원리에 철저히 부합하는 ``正音``을 만들어 비루한 습속을 타파하겠다는 의도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그리고 시조가 음악과 문학의 원류라는 편찬자들의 인식은 육당본 『가곡원류』를 소장하기도 했던 최남선의 사유 체계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청구영언』과 『가곡원류』가 구상했던 시조사는 발생론 중심에 한정되었다. 발생 이후부터 근대에 이르는 시조사 전체에 대한 관심은 손진태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의 『가곡대전』은 현존하지 않지만 고서 전문가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와의 교류 결과가 『교주 가곡집』을 비롯한 문헌에 남아 있다. 시조의 연원을 고대로부터 찾고자 한 손진태와는 달리 마에마는 15세기를 그 형성기로 간주하기는 했지만, 순고유어 장형시조를 선행 형태로 간주한 점은 인식을 같이 한다. 그리고 악곡과 작가 확정을 유념하여 작품을 시대 순으로 정렬시키고, 숙종 연간과 정철, 안민영 등을 시조사의 구획 기준으로 삼은 점은 오늘날의 시조사에 대한 인식과도 상통한다. 최남선은 전대 가집 편찬의 유산을 의식하여 악곡별 가집 『가곡선』, 주제별 가집 『시조유취』 등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시조유취』의 간행보다 다소 앞서 『백팔번뇌』를 출간할 즈음 18·9세기의 가집 편찬자들처럼 그 ``원류``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시조의 권위를 외국의 경전 『시경』에 기대거나, 그 발생을 삼국시대 또는 향가로부터 찾는 대신에 고조선의 ``노랫가락``이라는 종교·주술가요에 연원을 둔 것으로 보았다. 현존하는 시조로부터 ``노랫가락``과 같은 종교성이나 주술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그는 이들 사이의 동질성을 ``朝鮮我``의 그림자로 판단하고 시조에 세계문학의 지위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백팔번뇌』를 통해 시조를 ``사상의 一 容器``로 만들고자 하였는데, 여기서의 사상이란 세계문화로서 지위를 지닌 ``불함문화론``과 연관이 있다. 뿐만 아니라 원래 시조에는 없었지만 다른 고전시가 양식에는 있었던 종교, 여행, 민중성 등과 결부된 소재와 주제를 현대시조에 적극 포함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시조가 주인공이 되는 고전시가사의 재편을 기획하였다. 최남선의 기획이 구체적 성과에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조윤제의 『조선시가사강』에 대한 그의 공감과 더불어 훗날 조윤제의 『국문학사』가 이룩한 시조 중심 사관에는 초기 고전시가 연구자와 최남선 사이의 공감대가 보인다. 또한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사 인식의 영역을 통해 최남선의 유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어 초록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relation between recognition of Sijo of Choi Nam Seon and formtion of "sijo history``, exploring his heritage and assignments in the study of classic poetry. Attempts have been made to systematize cultural history focusing on sijo history in the poem collection compilation process. Cheongguyoungeon presented unique feature of sijo history in consideration of position of authors and balance between musicality and literary value. Gagokwonryu tried to give authority like Sigyeong to Sijo by raising musical completion. The point of view of determining sijo as "root" is connected to the attempt to find the origin of sijo from the primitive and ancient culture. Son Jin Tae and Maema Kyosaku tried to systematize overall sijo history focusing on several features. Choi Nam Seon tried to trace the origin of sijo from the ancestral rites of old Joseon. However, since it was difficult to find the tendency related to ancestral rites and religion from the existing sijo, he expanded abstract sijo theory, while devoting himself to creation of sijo in which various historical genres of works including religion, descriptive poe and dailiness are all implemented. He tried to reorganize the poetry of the future focusing on Sijo based on such performance. It is the recognition of sijo history for establishing traditions of the future rather than summary of the past. His attempt to reorganize poetry focusing on sijo is consistent with the poetry and literature history of Cho Yun Je. He evaluated overall poetry for sijo only, while summarizing literature history focusing on life cycle of sijo, which can be regarded as the heritage of Choi Nam Seon. Whether or not we give positive or negative evaluation of Choi Nam Seon, we cannot ignore or disregard him. His heritage remains in any form in the study of ancient poetry. Even if recognition of siga by Cho Yun Je is not related to that of Choi Nam Seon, we try to reach to the tradition of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 history through illustrated overlapping of abstract contexture related to sijo in various textbooks. However, could the Sijo theory become world literature theory as Dangun theory becomes Bulham culture theory? Is the conclusion different from the that of Bulhalm culture theory that should recognize the north side and east side as the upper part of Joseon and Japan, while sitting back and watching our myth implemented by others? The assignment left by Choi Nam Seon can be solved by examining his experience of creation including past and present, all elements of specials and commons in three dimen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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