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 장로교회 분열에 대한 재조명 ; 1959년 한국 장로교회 분열 원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

저작시기 2011.01 |등록일 2012.02.14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17페이지 | 가격 5,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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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장로교신학회 수록지정보 : 장로교회와 신학 / 8권 / 183 ~ 199 페이지
저자명 : 정병준 ( Byung Joon Chung )

없음

한국어 초록

1959년의 한국의 주류 장로교회는 합동과 통합으로 분열되었다. 교단 분열의 주원인에 대해 합동 측은 WCC 신학에 대한 양자의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한 반면, 통합 측은 분열의 근본 원인이 교권 논쟁이라고 주장한다. 통합 측은 박형룡 박사가 공금 유용 문제로 신학교 교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한국복음주의자협의회(NAE) 측이 교권을 다시 장악하기 위해 WCC 논쟁을 악용했다고 생각한다. 이 논문은 두 가지 분열 원인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한 쪽만을 주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밝히려는 것이다. 또한 두 원인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갈라진 두 교단의 심리적 치유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월남한 서북장로교 지도자들은 남한 장로교회 안에서 강력한 교권을 형성했다. 이들은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의 후원을 받으며 신학 교육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 중심 세력은 NAE 회원들이었다. 다른 한편 1950년대 미국 장로교회 해외 선교부는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강력한 주도력을 행사했는데, 그 영향력 아래서 한국 장로교회 안에서도 WCC와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계 지도자들이 생겨났다. 양자는 갈등하면서도 서로 타협하며 공존했다. 그러나 1959년 박형룡 박사가 정치적으로 실각한 이후 그 정치적, 신학적 갈등이 크게 드러나게 되었다. 필자는 세 가지 이유로 합동 측의 주장을 반대한다. 첫째, 대다수 한국 장로교인들은 에큐메니칼 운동과 WCC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지도자들을 따라 분열했다. 대부분의 목사들 역시 신학보다는 교권, 지역, 인맥을 따라 분열했다.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WCC에 대해 알고 있었고, 특히 박형룡 박사조차도 WCC에 대해 부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둘째, 통합 측은 교단을 분열시킬 만큼 WCC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통합 측이 중도파의 견해를 따라 WCC 탈퇴를 결의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셋째, WCC에 대한 박형룡 박사의 입장과 태도는 일관성이 없고 상황에 따라 변화했다. 그러나 통합 측의 주장도 합동 측을 설득하기에는 논리가 약하다. 합동의 입장에서 교단 분열의 배경에는 분명 신학적 이유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친WCC 지도자들은 교권을 독점하고 있는 NAE 세력에 대해 반감이 있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박형룡 박사의 재정적 실수는 친WCC에게 큰 기회로 작용했다. 반면, NAE 세력은 교권 수호와 보수 신학 수호를 동일시하면서 WCC 이슈를 정치적으로 사용했다. 그 배경에는 국제기독교협의회(ICCC)의 매킨타이어가 제공하는 신학과 자금이 있었다. 교단 분열 과정에서 누가 비윤리적 행위를 많이 했느냐 하는 문제는 학문적으로 밝힐 필요는 있겠지만 양 교단의 대화와 화해를 위해서는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1959년 장로교 분열은 신학 논쟁과 결합된 교권 투쟁에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영어 초록

In 1959 the main-lin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PCK) split into Hapdong and Tonghap. For the main reason of the schism, the Hapdong argues that it was based on theological differences between both on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while the Tonghap insists that it was because of the power hegemony. The Tonghap thinks that th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in Korea (NAE) made bad use of the WCC issue to retake their hegemony in the denomination after their reader, Dr. Park Hyong-nyong had retreated from the presidency of the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because of his ?nancial misuse. This paper is to articulate these two reasons above mentioned are entangled each other that it is not enough to emphasize only one of them. In addition a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 reasons of the schism seems to be helpful to open a psychological healing process of the divided denominations. After the emancipation of the Korea and the Korea War, a great number of northwestern Presbyterian church members came to the South Korea and formed a strong power group in the PCK and also took the hegemony of the theological education under the auspices of the American Presbyterian missionaries. Their core was the NAE group. On the other hand, during the 1950s the Presbyterian Church (USA) had strong in?uence on the WCC and the world ecumenical movement. Under the influence, some influential PCK leaders were in favor of the WCC and the ecumenical movement. The NAE and the pro-WCC groups had coexisted in a sort of compromise, but in a con?ict of interest, until Dr. Park`s happening. However the political and theological conflicts between both groups were sharply revealed thereafter. I refute the Hapdong`s argument for the following reasons. Firstly, almost all of the PCK members at that time didn`t know about the WCC and were just divided by their church ministers. Most of the church minister were also divided according to their political networks and regional backgrounds rather than their theological understandings. Even Dr. Park`s understanding on the WCC was incorrect. Secondly, for the Tonghap, the WCC theology was not such a crucial matter as to divide their denomination. It appeared when they made a decision to withdraw from the WCC for the purpose of reunion with the Hapdong in accordance with the centrist view. Thirdly, Dr. Park`s opinion and attitude on the WCC had been changeable depending on conditions. I also think the Tonghap`s argument is not enough to persuade the Hapdong side. There was not without a theological reason for the leaders of the Haptong. The contemporary pro-WCC leaders antagonized the NAE group who had tried to make a monopoly of the power hegemony and vice versa. Dr. Park`s financial mistake turned out to the Pro-WCC group`s advantage. On the other hand, the NAE group didn`t hesitate to make bad use of the WCC issue, identifying their power struggle as a tool to uphold the conservative theology. There were also theological and financial supports of the Dr. Carl McIntyre of the 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behind the NAE group. It needs to see, in academic circles, who behaved ungentlemanly more than the other in the process of the schism. However it seems of no use for their reconciliation. The point is here to say the PCK schism of 1959 was mainly due to their power struggle combined with their theological con?ict on the W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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