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세유표(經世遺表)』에 드러난 다산(茶山) 경세론(經世論)의 역사적 성격

저작시기 2011.01 |등록일 2011.10.19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76페이지 | 가격 11,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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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퇴계학연구원 수록지정보 : 퇴계학보 / 129권 / 61 ~ 136 페이지
저자명 : 김태영 ( Tae Yeong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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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다산 정약용은 磻溪 柳馨遠에서 星湖 李瀷으로 이어지는 왕정론적 경세론의 전통을 계승하여 『경세유표』를 저술하였다. 이들의 경세론은 모두, 삼대 왕정이 지난 이후의 통치법제는 弊法을 인습해온 것이며, 더구나``조종의 법제``에 가탁하는 현실태 지배체제는 지배층의 다극적 농단을 허용하는 행태로 구조화하여 일종의 수탈기구로 작동한다는 비판적 현실인식에서 출발한다. 다산은 거기에 다시, 왕정이 지난 후로 古聖人의 經傳에 대한 해석마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다시는 至治를 구현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인식을 더한다. 그는 주자학을 넘어, 古經 본래의 원리를 탐구하는데 전력을 다하였으며, 그 결과 이제까지의 어느 누구와도 다른 새로운 차원의 經學 수준을 성취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또한 새로운 차원의 변법적 경세론인 『경세유표』를 저술할 수가 있었다. 『경세유표』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차원의 변법론적 과업을 설정하고 있다. 그 하나는 끝없이 만연해온 지배층의 인습과 비리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체제 자체를 새로운 기준에 따라 혁신한다는 과업이다. 다른 하나는 지배층의 수탈로 인해 지리멸렬한 상태를 답습하는 모든 경제·산업분야의 생산력을 제고시킨다는 과업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실현하기 위해 행정·경제의 모든 분야에다 분업적 專治의 원칙을 도입함으로써 모든 臣民을 자립적 自營의 주체로 거듭나게 한다는 고안을 두었다. 『경세유표』의 국가개혁론이 가장 역점을 두어 서술한 분야는 국가 운영의 사회경제적 바탕으로서 井田制와 賦貢制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과제였다. 다산은 자신이 깨쳐낸 정전제론이야말로 ``先王의 本法``인 것이므로 왕정을 회복하자면 이를 기초로 하지 않고서는 다른 법이 없다는 깊은 확신에 도달하였다. 또한 농업 이외의 산업 제 분야를 분업적으로 개발하고 진흥함으로써 민생의 안정과 國富의 증대를 꾀한다는 획기적 개혁론을 고안하였다. 그래서 정전의 田租 및 여타 산업의 賦斂 두 가지를 국가 재정의 양대 원천으로 삼는다 하였다. 그 같은 새로운 국가개혁을 편성 배치하고 이를 추진할 주체는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 행정력이었다. 가령 교육제도를 비롯하여 정전제라든가 부공제 등 모든 분야의 개혁과 추진은 모두 국가의 행정적 기구를 통해, 그 연속선상에서 실행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결국 국가체제 위주의 분업적 협업을 통한 왕정이 구현되도록 기획한 것이다. 『경세유표』에서는 새로운 왕정의 시대를 열기 위한 의도적 고안을 다각도로 제시한다. 무엇보다도 구래의 인습적 비리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기준에 의한 개혁 법제들을 명백히 정비하고, 齊一的 法治가 이루어지도록 추진한다. 도량형을 비롯한 새로운 數理에 근거를 둔 객관적 통치 기준이 다방면으로 마련된다. 그리고 모든 개혁안을 조직 편성하고 추진할 최고의 주체인 왕권이 크게 강화되지만, 그러나 왕권도 법제를 따라 왕정을 구현하는 제도왕으로서의 속성을 지닌다. 『경세유표』가 여타 실학자들의 경세론과 가장 큰 질적인 차이를 보이는 큰 지표로는, 무엇보다도 경제·산업의 개발과 진흥이라든가 혹은 만민을 9職으로 나누어 각자 자기 직분을 분업적으로 專治하도록 편성 배치하는 새로운 정치사업에다 국가 통치·행정의 주된 관심을 기울이도록 고안하였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다산의 왕정론이 곧 새로운 역사시대를 지향하는 새로운 國家論으로 기획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경세유표』는 우리나라 전근대 국가체제의 구성과 운용에 관한 제도적 原型들을 전반적 종합적으로 집약해 놓았다. 그 원형들을 더 곡진하게 설명하기 위해 중국의 역사적 사례들을 무수히 원용하였다. 무릇 국가라는 공동체를 운용하면서 그 주민들 각자가 각기의 실질을 살려 성취할 수 있는 다양한 길들을 곡진히 모색하고 제시하되, 이상적인 면에서부터 현실적인 면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례들을 탐구함으로써 전근대 국가체제의 最後의 原型을 집대성해 놓기에 이르렀다.

영어 초록

Jeong Yak-yong`s reform thought began with the critical thinking that the present government system was so structuralized as to permit many irrationalities and it functioned for exploitations, but the system was justified on the ground that it was the tradition since the founding of the Joseon Dynasty. Also he thought that the late commentaries for the Confucian Classics by Old Sages were incorrect after Wang-Zheng (kingly government) had been collapsed, and this fact made things worse. Accordingly, he made every effort to reach to the original meanings of the principles in the Confucian Classics by Old Sages and it resulted in a new dimensional accomplishment for the interpretation of the Confucian Classics. Based on the accomplishment, he wrote a book which was named Gyeongseyupyo (A Memorabilia for the Reformation of National System on the Whole). He showed two tasks in the book, Gyeongseyupyots. The one was the reformation of the national system on the whole according to a new standard, so as to get rid of long-established conventions and irrationalities. The other was the utmost uplift of productivity in all parts of industries. so as to overcome the stagnation by the ruling class` exploitations. In order to accomplish these two tasks, he proposed to adopt to the principle of specialized occupations based on the division of labor in all parts of administrations and economies. He prospected that the adoption of the principle of specialized occupations would make every people possible to be born again as self-supporting subject. Gyeongseyupyo showed his plans in many respects, for the advent of the era of a new Wang-Zheng (kingly government). First, he proposed the arrangement of new systems based on a new consistent standard to remove old conventional irrationalities and accomplish unified governments. Secondly, he proposed the arrangement of new systems based on mathematical principles, including weights and measures system. Thirdly, the political power of the king might be strengthened to implement the plans in Gyeongseyupyo but the royal power would be subjected to the National System. His government would not be arbitrary but observe systems for the kingly government. The qualitative difference between Gyeongseyupyo and other Practical Scholars` works lies in the fact that he proposed to adopt to the principle of specialized occupations based on the division of labor and pay main attention to it in all part of administrations. This fact means that Gyeongseyupyo qualitatively different argument for the National System, to prospect the advent of a new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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