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의 전쟁의 글쓰기와 여성

저작시기 2011.01 |등록일 2011.08.09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33페이지 | 가격 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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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불어불문학회 수록지정보 : 불어불문학연구 / 85권 / 5 ~ 37 페이지
저자명 : 조영훈 ( Yeung Hun Cho )

없음

한국어 초록

본 논문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사르트르의 소설 『자유의 길』3부작 (『철들 무렵』, 『유예』, 『영혼 속의 죽음』그리고 미완의 『기이한 우정』)과 ≪야릇한 전쟁≫ 기간 동안 병사 사르트르에 의해 쓰인 『전쟁 수첩』과 편지를 중심으로 사르트르의 여성관을 재조명하고 있다. 전쟁 소설에서 여성들은 부수적인 역할만을 담당한다. 병사가 될 수 있는 <특권>이 박탈되어 있는 여성들에게 전쟁은 소설 사회 속에서의 시민권을 거부한다. 원시시대 이래 전쟁은 노동의 성적 분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생명을 부여하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걸면서 인간은 동물 상태를 넘어선다. 따라서 인류에게 있어서 우월성은 낳는 성이 아닌 죽이는 성에게 부여되었다" 라고 지적한다. 『구토』에서 『자유의 길』에 이르기까지 소설가 사르트르는 여성 인물들의 무기력하고 수동적이며 범용하고 보수적인 면모들을 부각시킴으로써 여성적인 것에 결정론적 <본성>을 부여하는 듯하며, 사르트르에게 있어 남성/여성의 이분법과 자유로운 존재/응고된 존재의 이분법이 일치하고 있는 듯하다. 이와 같은 여성성의 부정적 표상은 철학자 사르트르의 자유의 인간학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독자들을 당혹시키기에 충분하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무엇보다도 미래를 향해 자신을 투기하는 자이다. 실존철학은 이미 결정된 본질로서의 그리고 영속적 규정으로서의 인간 본성의 관념을 거부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Dorothy Mac Call은 실존철학은 그 자체 논리 속에서 페미니즘을 포함(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철학적 이념과 소설적 재현 사이의 모순은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이상주의적, 교화주의적 자유의 철학을 설파하는 철학자 바로 옆에 좀 더 사실주의적이고 비관론에 사로잡힌 소설가를 보는 셈이다. 따라서 Suzanne Lilar와 Michele Le Doeuff 등과 함께 사르트르의 철학적 이론과 허구의 작품 간에 모순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해 봐야 한다. 비평가들은 사르트르가 여성을 주로 <점액질visqueux>이라는 물질적 이미지로 비유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점액질>의 물질성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구토』 의 체험은 인간과 세계와의 진정한 만남은 기존 질서체계의 의미를 벗어버린 사물들과의 몽환적 접촉에서 시작되며, 이때 <점액질>을 포함한 범람, 유동, 증식의 물질성은 진정한 창조적 모험의 출발을 상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점액질>은 긍정적, 부정적 두 방향으로 여가(與價)되어 각각 <바다>와 <식물>의 테마를 발생시킨다. 사르트르에 있어 여성의 이미지는 수동성을 의미하는 <식물>의 테마와 유사성을 보인다. 『구토』에서 이미 꿈틀대기 시작한 <바다>는 『유예』에서 거대한 운동의 힘으로 드러난다. 『구토』에서 화자가 빈번히 드나드는 "역부회관"은 서로 대립하는 두 세계로 구성되며, 작품의 결구에서 로캉탱은 순수한 운동으로 표상되는 <재즈>의 세계를 선택하며 기차를 타고 모험을 떠난다. 『자유의 길』에서 <교통기관에 승선하기>는 가장 중요한 라이트 모티브를 형성한다. 『유예』에서 징집병들을 전선으로 실어나르는 <기차의 옆질roulis du train>은 전쟁의 위기의 가속화를, 『영혼 속의 죽음』에서 포로가 된 병사들이 종착지도 모른 채 실려가는 기차의 선로의 분기점은 집단적 운명의 갈림길을 상징한다. 『유예』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기선은 뮌헨 협정의 위기를 통과하는 전 유럽을 환유한다. 이때 <배의 키질tangage du bateau>은 작품의 모든 요소들을 동조화시키는 공명기로써 작용한다. 『구토』에서의 모험-운동의 세계와 여성-식물의 세계의 대립은 『자유의 길』에서 교통기관에 승선하기-전쟁에 들어가기와 교통기관에서 하선하기-전쟁에서 나오기의 대립으로 확대 발전된다. 많은 비평가들은 『구토』의 Anny와 『자유의 길』의 Ivich 만은 사르트르가 여성에게 가한 부정적 판단에서 벗어난 인물이라고 믿는다. 안니는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프루스트식의 <완벽한 순간>을 추구하는 여성이다. 안니의 예술적·연극적 삶은 언제나 로캉탱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로캉탱은 안니와의 재회를 통해 자신의 구원을 모색한다. 안니는 사르트르가 몇 년간 관계를 맺었던 실제 여성을 모델로 가장 심혈을 기울여 형상화한 인물이다. 그러나 ≪야릇한 전쟁≫ 기간 동안 병사-작가 사르트르에 의해 쓰인 편지에는 『구토』의 작가가 보여준 바와는 사뭇 다른 태도가 나타난다. "내면적 자아"의 신화를 신봉했던 여성은 전쟁의 위협 앞에서 <n`importe qui>로 환원된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한다. 『철들 무렵』의 이비크는 마티외에게 젊음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러시아 혁명 때에 망명한 귀족가문 출신으로 세계적 위기 상황에 민감한 이 인물은 소설의 공간 속에 <배의 갑판 위의 이민자들emigrants sur un pont de bateau>라는 테마를 발생시켜, 스페인 전쟁 패배 후 미국으로 망명한 고메즈, 『영혼 속의 죽음』의 프랑스 군대의 패주 속의 마티외, 포로들의 집단적 강제 유형, 그리고 『기이한 우정』의 수용소에서 레지스탕스를 조직하는 브뤼네에게 연속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나, 정작 본인은 교통기관에 승선하여 현기증나는 운동 속에서 전쟁이라는 <여행-시련voyage-epreuve>을 체험함으로써 존재론적 상승을 하는 <특권>을 향유하지 못한다. 가령, 『유예』에서 최초의 척추병 환자들의 강제 수송에서 짐짝처럼 화물칸에 실린 샤를르와 카트린느가 기차의 질주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하며 사랑을 획득하는 것처럼, 이비크와 마티외의 사랑도 교통기관 안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파리 도심을 통과하는 택시 속에서다. 택시는 잦은 멈춤과 느린 속도로 인해 일상적 시간성의 엄습으로부터 사랑의 자발성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그것은 막 태어나자 마자 이미 낡아버린 사랑으로 전락한다. 사르트르 소설에서 문제가 없는 유일한 관계는 『유예』와 『영혼 속의 죽음』에 등장하여 마티외와 단 한번의 사랑을 나누는 Irene와의 관계이다. 그들은 서로의 이름도 모른채 <n`importe qui>로서 "익명의 하룻밤"을 공유한다. 이렌느 외에 긍정적으로 표상된 여성으로는 『구토』에서 재즈를 부르는 흑인 여가수와, 셍고르가 편집했던 『불어로 쓰여진 아프리카 흑인 시전집』의 서문인 「검은 오르페」에서 사르트르가 인종 차별 없는 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는 가장 혁명적인 시라고 찬양한 <네그리튀드Negrutude>에 등장하는 흑인 여성을 들 수 있다. 특히, <네그리튀드>의 원천으로서 "인간과 자연과의 합일", "흑인 남성과 여성과의 결합" 그리고 "식물적 상징들과 성적 상징들 간의 깊은 융합"을 들고 있는 「검은 오르페」는 사르트르에게 있어서 여성과 식물의 이미지가 그 자체로 부정적이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사르트르에게 기존 질서 체계의 전면적 붕괴와 새로운 세계의 묵시록적 탄생이라는 전쟁관을 배양한다. 『자유의 길』3부작은 전쟁의 운동 상태에 연결되지 않는 여성성의 여가작용을 부인한다. 1940년대의 사르트르는 계급투쟁과 여성운동은 서로 접목되어야 하지만, 계급투쟁을 가장 시급한 1차적 투쟁으로 여성운동을 부수적 2차적 투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1975년에 사르트르는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대담에서 여성운동을 가장 시급한 1차적 투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그 근거로 부르주아 여성과 하녀 또는 가정부 사이에, 또는 사장의 부인과 노동자의 아내 사이에 가능한 여성으로서의 동질감을 들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유예』에서 노동자 모리스의 아내 제제트가 뮌헨 협정의 위기 속에서 전쟁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는 부르주아 여성단체 앞에서 보이는 계급의식과는 묘한 대조를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르트르의 남성적 원리와 여성적 원리의 대립은 글쓰기의 <성적> 규정에까지 작용한다. ≪야릇한 전쟁≫ 기간 동안 병사 사르트르는 일기체 글쓰기로 『전쟁 수첩』과 편지들을 남기고 있으며, 『구토』와 『자유의 길』3부작 중 특히 전쟁의 글쓰기가 극대화된 『유예』또한 날짜가 매겨진 일기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작품들은 잡다한 이종 교배식 글쓰기라는 공동 특징을 지닌다. 각 작품은 동일한 주제 또는 동일한 상황에 연관된 여러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요소들은 서로 매우 이질적이고 항용 미완성이고 언제라도 새로 시작하며 때로는 상호 파괴적이다. 텍스트는 특히 운동과 자유로운 흐름, 즉흥성과 예측불가능성에 의해 의미를 생산한다. 사르트르에 있어 일기체 글쓰기는 혼란과 동요, 파열과 붕괴가 지배하는 세계 즉 현란한 운동 상태의 세계를 재현하는 탁월한 수단이다. 즉, 사르트르에 있어 일기는 무엇보다도 <전쟁 일기journal guerrier>이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일기체 글쓰기가 지닐 수 있는 내재적 위험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로캉탱은 "내 느낌을 예쁜 새 공책에 계집애들처럼 매일같이 쓰는 일을 그만 두겠다"라며 일시적으로 일기 쓰는 일을 포기하며, 병사-작가는 ≪야릇한 전쟁≫ 기간 동안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여러 작가들의 일기를 읽으면서 "일기의 문제는 진실성이다"라고 개탄한다. 병사 사르트르에게 다른 작가들의 평화로운 시절에 쓰인 <점액질>의 시간성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 일기가 어떻게 보였을까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당시의 사르트르에게 있어 운동과 비 운동의 대립, 전쟁 상태와 비 전쟁 상태의 대립은 이처럼 전횡적이어서 자의적 장르 개념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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