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논문초록 : 샤를마뉴의 제국사상에 관한 연구 - 궁정학술원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2010.07.21
최종 저작일
19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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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서양사학회 수록지정보 : 서양사론 / 41권
저자명 : 배옥남

한국어 초록

본 논문은 샤를마뉴(Charlemagne)의 宮廷學者들이 카톨링朝의 帝國思想과 文化의 발전을 어떤 방향으로 主導해 왔는가를 연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샤를마뉴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통치한다고 확신한 神政主義的인 군주였으며, 그에게 세속적인 통치권과 함께 교회를 통치할 권리와 의무도 함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특히 794년에서 804년 사이에 샤를마뉴의 궁정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散文과 詩는 古典的인 文學과 敎父神學에 관련된 내용으로, 그것은 `caritas`에 대한 愛情에 의하여 맺어진 학술원의 우정어린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학술원을 이끌었던 알퀸은, 학술원 존재의 필요성에 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 학술원 학자와 철학자 왕인 샤를마뉴가 프랑크에서 `new Athens`를 세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엑크스-라-샤펠에서 古典的 理性主義의 상징인 플라톤의 아테네를 능가할 것이라고 自負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프랑크인들을 敎化시켜왔기 때문이다. 둘째, 알퀸은 학술원을 신앙과 행동의 표준 규범에 근거를 둔 충실한 조직체로 생각하였다. 794-796년 경에 알퀸은 샬를마뉴의 정복 사업과 교회에 대한 그의 條例를 정당화시키고 이론적 토대의 초안을 작성하였다. 특히 카롤링朝의 교회는 왕권과 同伴者的인 사회 세력을 형성하였고 중개자이자 권위 부여자이었으며, 서방의 문화 유산의 보존자로서 당시의 다른 어떤 기관보다도 흘륭한 업무를 수행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알퀸은 신성한 다윗 왕권의 모델을 이러한 이론적 토대의 바탕으로 삼았다. 최고의 判官이요 軍事的 統帥權者로서 샤를마뉴는 천년 왕국설에 의한 `비기독교 인민`의 改宗, 교회의 성직자團에 대한 그의 통제, 그리고 異敎徒들에 대하여 그의 正統 基督敎를 수호하는 것은 準帝國的 권력 행사의 암시로 파악돼야한다. 알퀸을 중심으로 한 학술원의 회원들은 798년 경에 이러한 권력을 완전하게 재조직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샤를마뉴의 왕권에 대한 성직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세를 강조하였다. 특히 800년에 교황 레오 3세가 샤를마뉴에게 帝位를 주도록 誘發한 로마에서의 攪亂은 기독교 帝國에서 샤를마뉴만이 왕국과 교회를 적당히 調停할 수 있는 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학술원의 믿음을 촉진시키는 契機가 되었다. 799년에 쓰여진 Karolus Magnus et Leo Papa 와 같은 詩文에 나타난 샤를마뉴는 `new Rome` 황제의 모습 그 자체였다. 서양 세계의 경건한 영웅적인 지도자인 샤를마뉴는 종교적이며 세속적인 계층의 首長이 되었으며, 그의 신앙심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의 帝國을 지배하는 帝國的인 지위를 보장하였다. 실제로 그는 경건하게 신의 律法을 집행하였고, 西方國家들에 帝國의 평화를 賦與하였다는 점은 높이 평가돼야 할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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