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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賜牌田의 失傳과 不遷位 位土의 마련 (Loss of Inheritance of Sapaejeon and Buying Land for Bulcheonwi - Focused on Ancient Documents of Kim Jongjik's Head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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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15 최종저작일 20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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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賜牌田의 失傳과 不遷位 位土의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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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 수록지 정보 : 古文書硏究 / 48권 / 165 ~ 190페이지
    · 저자명 : 이상현

    초록

    金宗直 宗家에 남아 있는 分財記는 40점으로 가문에 소장된 고문서 가운데 가장 잘 보전되어 있는 문서중의 하나이며,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 또한 매우 높다. 그 분재기 가운데 1724년(경종 4) 門中에서 祀孫 金世鳴에게 준 분재기는 先祖 김종직의 不遷位를 위해 문중에서 재산을 모아 祭位條를 만들면서 종손에게 작성해 준 문서이다. 문서의 내용에는 사패전이 없어졌기 때문에 불천위를 위해 제위조를 만든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작 사패전이 없어진 이유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문에 소장된 자료에도 이와 관련기록이 없었다. 1930년대 조선사편수위원회에서 사료조사에 의해 김종직종가의 가문문서 82점이 조사되어 현재 유리원판자료로 국사편찬위원회에 보관되어 있다. 82점의 문서 가운데 18점의 문서가 위의 분재기에서 언급된 사패전 관련 자료들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議送이 10점·關이 1점·사패전답기가 7점이 있다. 문서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사패전 소송에 관한 문서로서 이를 통해 김종직 종가의 사패전이 어떻게 失傳되었고, 그것을 찾으려는 후손들의 노력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었다.
    이 사패전은 김종직이 성종에게 사패전답을 병으로 密陽에 요양하고 있을 당시 받았다. 그가 죽은 뒤 戊午士禍로 인해 관에 몰수당했다가 中宗反正때 신원이 회복되고 이로 말미암아 다시 되찾게 되었다. 이후로 후손에게 전해졌다는 것을 1584년(선조 17) 1월 5일에 金綸의 妻 河氏가 작성한 분재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후 사패전의 향방을 알 수 없었으나 위의 1633년(인조 11)~1738년(영조 14)까지 총 9건의 議送과 1건의 關을 통해 사패전을 되찾은 시기는 대략 1600년(선조33) 이전으로 김갑령에 의해 되찾았으며, 肅宗代까지 사패전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사패전이 없어진 이유를 살펴보면 하나는 壬辰倭亂으로 인해 토지가 대부분 황무지가 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 東萊에 사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據執 때문이었다. 이는 의송과 사패전답기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사패전을 관리하던 김갑령과 그의 후손이 빈곤하여 거집된 토지 이외를 放賣한 것이다. 1653년(효종 4)에 작성된 의송과 이후에 작성된 대부분의 의송을 보면 김갑령 또는 김갑령의 지손이 사패전을 임의로 방매하였다고 이들을 처벌하고 사패전을 되찾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패전이 없어진 이유 중 하나가 김갑령과 그의 후손들이 땅을 방매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김종직의 불천위 奉行은 4대 봉사가 끝난 이후라고 생각되지만 4대 봉사 이후에 불천위가 奉行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는 없었다. 하지만 1724년에 작성된 분재기를 통해 적어도 이때부터 불천위를 모셨다는 것을 기록을 통해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불천위를 모시기 위해 친족들이 재산을 모와 불천위 위토를 마련하였다는 것과 본래 불천위 위토를 사패전을 가지고 만들려고 했다는 점도 살펴볼 수 있었다.
    하나의 분재기와 분재기의 속의 사패전 관련 내용 그리고 사패전과 연관된 문서를 통해 한 가문에서 사패전을 받아 어떻게 관리 전승되었고 어떻게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사례로서 의의가 있으며, 사패전을 연구하는데 하나의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잃어버린 사패전을 대신하여 친족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모아 조상의 불천위 위토를 형성하는 점은 이 가문만이 가지는 특수한 사례로서 의의가 있다.

    영어초록

    The Bunjaeki owned in head family of Kim Jongjik are 40 pieces, and they are one of best preserved documents among all ancient documents owned by that family and also so valuable as material for study.
    Among those Bunjaeki, the Bunjaeki which was given to Sason Kim Semyeong from Kim's family at 1724(Kyeongjong 4) is a document written for the eldest grandson of that family as Kim's families prepared financial asset to buy Jewijo for their ancestor Kim Jongjik's Bulcheonwi. According to the document, it said that they are making Jewijo for Bulcheonwi because they lost Sapaejeon. But actually not only there is no mention on the reason why the Sapaejeon was lost, but also there is no related records in material owned by that family.
    The 82 pieces of family documents of Kim Jongjik's head family were confirmed by ancient document investigation performed by the Committee of Joseon History Compilation and they are now being preserved as negative glass material at the National History Compilation. Among 82 documents, 18 of them are the materials related to Sapaejeon mentioned above at Bunjaeki.
    According to those documents, most of them are about Sapaejeon litigation, and we could understand the details through these how the Sapaejeon of Kim Jongjik's family was lost and what efforts his descendants made to regain it.
    Kim Jongjik received this Sapaejeon from Seongjong as Sapaejeondab while he was in recuperation from disease at Milyang. It was confiscated by the government at Muosawha after his death and regained at Jungjongbanjeong by restoration of his status. We can learn this from Bunjeaki written by Kim Ryun's wife Ha Ssi at 1584(Seonjo 17). The where about of Sapaejeon after the outbreak of Imjinwaeran was not known.
    But we could assume that Kim Gabryeong regained Sapaejeon before about 1600(Seonjo 33) through 9 of Eusong and 1 of Kwan from 1633(Injo 11) to 1738(Yeongjo 14) and it had been remained until Sookjong period.
    The reason of loss of this Sapaejeon is because of continuous occupation with fake documents by residents in Dongrae area in the situation that most of the land were destroyed by Imjinwaeran. The other reason is that Kim Kabryeong and his descendents, who had administered the Sapaejeon, were in poverty, so they sold the land except those occupied by others. If we examine the Eusong written at 1653(Hyojong 4) and most of Eusongs written after that, it said Kim Kabryeong or his posterity sold the Sapaejeon without family's permission, so they were asking to punish these and allow to regain the Sapaejeon.
    The duty serving to Kim Jongjik's Bulcheonwi is thought to be after completion of duty service by 4 generations, but we can't clearly know if it was carried out also after 4 generations' duty service. But we can know through Bunjaeki written at 1724 that Bulcheonwi had been served at least from this time. And the family gathered financial assets to buy Wito to serve Bulcheonwi and we could examine that they originally tried to buy Wito with Sapaejeon.
    This has a meaning that we could understand how a family received, administered and inherited Sapaejeon and how they lost it through a Bunjaeki and its contents related to Sapaejeon and documents related to Sapaejeon, I think this would be a contribution to studying the Sapaejeon. And the point that the families and relatives gathered their financial assets to form ancestor's Bulcheonwi Wito to replace lost Sapaejeon has a meaning as a particular case that only this family has.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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