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논문 : 분재기를 통해서 본 분재와 봉사 관행의 변천 -부안김씨 고문서를 중심으로-

저작시기 2003.01 |등록일 2004.10.29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22페이지 | 가격 5,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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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수록지정보 : 고문서연구 / 22권 / 249 ~ 270 페이지
저자명 : 전경목 ( Jeon Gyeong Mog )

없음

한국어 초록

필자는 分財記를 분석하여 分財와 奉祀의 관행이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본고에서 분석할 분재기는 모두 전라도 부안의 우반동에 세거하던 부안김씨 소장 고문서이다. 이 고문서를 분석하여 분재와 봉사의 관행이 다음과 같이 변천되었음을 규명하였다. 조선초기와 중기에는 부모가 재산을 자녀에게 균등하게 분배하였다. 자녀들은 아들·딸 구별없이 부모의 제사를 돌려가며 지냈다. 그러다가 17세기 중반 무렵부터 재산 분배와 제사 상속에 커다란 변화가 왔다. 즉 딸에게는 제사를 輪行시키지 않고 아울러 재산도 차등 지급하였다. 그러나 아들들은 여전히 재사를 균등하게 분배받고 제사도 돌아가며 지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 분재와 봉사의 관행이 다시 한 번 바뀌게 되었다. 제사는 오로지 長子만이 지내도록 하였으며 재산도 거의 대부분을 장자가 물려받았던 것이다. 장작 대부분의 부모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제사 봉행 때문이었으며 물려받은 재산의 대부분도 제사를 받드는데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토지와 노비였다. 이와 같이 분재와 봉사의 관행이 변화하게 된 것은 우선 宗法의 영향이었다. 종법에 대한 이해가 점차 깊어지면서 딸들에게 제사를 돌려가며 지내지 못하게 하였다. 또 인구가 크게 증가하자 아들들에게 균등하게 분배하던 재산 분배 방식을 지양하고 오로지 장자에게만 재산을 물려주었다. 분재와 봉사 관행의 변화는 조선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조선 초기와 중기에는 妻家로부터 재산을 물려받게 되자 혼인 후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사는 이른바 처가살이가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에는 처가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자 이젠 역으로 혼인 후 신부가 신랑의 집으로 들어와 사는 시집살이가 보편화 되었다. 특정한 마을에 같은 성씨들이 대대로 사는 소위 동성마을이 전국 각지에 형성되기 시작한 것도 분재와 봉사 관행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또 사회의 예의범절과 각종 규범 등이 전형적인 유교사회의 그것으로 변화한 것도 분재와 봉사 관해의 변천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에 글을 달리하여 살펴볼 예정이다.

영어 초록

In this study I inquired into the transition of the practice of sharing property and performing a memorial service analysing the contents of the texts, Records of Sbring Property. The texts used in this treatise are all the old documents owned by Bum Kim`s Family who have lived in Ukmdong` Buan, Qwlh-clo. Through the study of the texts I came to the conclusion that the practice of sharing property and performing a memorial service were changed as follows. Parents shared their property equally to their children in the early and middle Choson. And children one by one performed a memorial service for parents regardless of sons and daughters. But the division of property and the inheritance of a memorial service were changed greatly in around the middle seventeenth century. To daughters the right of A memorial service was not given and to them property was also divided unequally. But to sons property was shared equally and they in turn performed a memorial service for parents. After a short time there were another changes in the practice of sharing property and performing a memorial service. The oldest son only had the right to hold a memorial service and he also inherited most of property of parents. The change of the practice of sharing property and performing a memorial service had a great effect on the Choson society. Living in his wife`s home was widespread in the early and middle Choson because a bridegroom inherited the property of his wife`s home. But Living in her husband`s home was popular after the middle Choson because a bridegroom didn`t inherit the property. Making of villages of the same family name is also close related with the change of the practice of sharing property and performing a memorial 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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