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시대 기생에 대한 오해와 진실-역사논문과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기생의 다양한 기원과 명칭
Ⅲ. 조선시대 관기 기생의 다양한 면모
1. 여악(女樂)
2. 의녀(醫女)
Ⅳ. 기생의 매춘
Ⅴ.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현대인들은 대부분 대중매체를 통해 방영되는 사극 드라마나 영화가 팩션(Faction)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들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을 사실로 착각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기생의 性적 이미지만을 강조한 것을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전문적으로 기생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제외하고, 대부분 매체 속에서 등장하는 기생의 모습은 양반 옆에서 술을 따르거나 몸을 파는 여성으로 나타난다. 그녀들의 주요 역할인 여악의 모습은 대부분 찾아볼 수 없다. 이에 왜곡된 이미지로 알려져 있는 기생의 실질적인 역할과 면모를 서술함으로써 기생을 성적인 이미지로만 보았던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기생의 성(性)적 이미지 강조는 일제강점기 기생의 성 상품화에서 시작되었다. 일제 강점기시대에 들어오면서 조선왕조의 멸망과 함께 관기제도가 소멸되고, 변모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근대적 의미의 매춘업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매춘문화는 일본식으로 번안되는 과정을 밟는다. 이 과정에서 기생에 대한 인식은 상당부분 변화를 거치게 된다. 과거 매창불매음(賣唱不賣淫)이라는 기생의 지조나 절개는 이미 사라지고 누구나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기생의 민중화',‘상품화’의 과정을 밟아간 것이다.
일본은 ‘기생 엽서’, ‘포스터’등을 통해 기생의 상품화를 더욱 부각시킨다. 사진과 사진엽서는 사실적인 이미지를 통해 대중들에게 다른 민족들의 풍속과 문화를 한눈에 보고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차원의 근대적 시각 이미지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제가 발행한 사진엽서 속에 나타난 기생 이미지를 통해 한복을 입은 여인으로 대표되는 ‘조선전통’의 이미지가 일본의 조선 타자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동시에 이미지가 일제의 맥락뿐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性)의 맥락 속에서 근대적 볼거리의 대상물이 되어 온 이중의 질곡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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