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국가 바깥에서 등장한 조선인 ‘위안부’와 귀향의 거부/실패 -1991년 이전 대중매체의 일본군 ‘위안부’ 재현을 중심으로-

최초 등록일
2020.06.30
최종 저작일
2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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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수록지정보 : 사이間SAI / 28권
저자명 : 이지은 ( Lee Jieun )

한국어 초록

이 글은 1991년 이전 민족국가 바깥에서 등장한 세 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의 삶을 살펴보고, 이들에 대한 당대 대중매체의 재현 방식을 반성적으로 살펴보았다. 배봉기, 노수복, 배옥수의 삶은 대중매체를 통해 직· 간접적으로 고국에 알려졌으나 다양한 글쓰기 전략과 텍스트 짜깁기를 통해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외설적으로 소비되었다. 결국 이들의 귀향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달성되지 못했다. 배봉기의 귀향의 거부/실패의 원인이 오십여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여성에게 특별히 더 가혹한 가난에 있었다면, 베트남난민이었던 배옥수는 젠더와 국적에 따른 차별에 의해 고국에서 잊혀졌다. 노수복은 비교적 한국의 활동가· 시민단체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나, 그녀 역시 자신을 “중국인”으로 소개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대중매체는 조선인 ‘위안부’를 민족 수난사의 증인으로 호명하는 동시에 순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서사를 통해 이들을 공동체 바깥으로 배제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안과 바깥은 민족국가의 서사일 뿐, 배봉기, 노수복, 배옥수의 삶의 터전은 민족국가의 범위를 넘어서 있었다. 민족국가의 서사로 말끔히 회수되지 않는 이들의 삶의 현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초국가적 성격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영어 초록

Hak-soon Kim’s testimony in 1991 aroused immediate resonance in academic circles and civil society not only because of the power of her testimony but also because of the presence of the people who are ‘ready to hear’. Thus, we need to reflect how the testimonies of Bong-ki Bae of Okinawa in 1975, Soo-bok Roh of Thailand in 1984 and Vietnamese refugee Ok-soo Bae in the same year were reproduced. Exploring the aspects of representation of the testimonies by the ‘Comfort Women’ in Japanese military before 1991 has 3 significant meanings;First, this study looks into how victimized ‘Comfort Women’ were reproduced as post-colonial nationalism and misogyny intersect each other. Second, through the failure/rejection of the homecoming of the survivors that appeared outside the nation-state, study demonstrates that the problem of ‘Comfort Women’ in Japanese Military cannot converge into a problem of nation-state. Lastly, the scenes of the failure/rejection of Bong-ki Bae’s and Soo-bok Roh’s homecoming in 1988 imply the beginning of Jeong Dae-hyup (Korean Council for Women drafted for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 and Asian Women’s Solidarity, which requires special attention. The failure/rejection of witnesses’ homecoming before 1991 shows that the problem of ‘Comfort Women’ in Japanese Military cannot converge into a problem of nation-state and became the starting point for transnational women’s solidarity.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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