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애의 방랑과 기행 -여성 사회주의자의 동북아시아 루트와 반제국 서사-

최초 등록일
2020.06.30
최종 저작일
2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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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수록지정보 : 사이間SAI / 28권
저자명 : 류진희 ( 柳眞熙 )

한국어 초록

백신애(1908~1939)는 여성 사회주의자였으며, 동시에 여성작가였다. 식민지기 여성 사회주의자는 비합법 요시찰(要視察)의 대상이었고, 여성 작가는 어디까지나 합법적 매체 장에서 배태된 존재였다. 애초에 이 둘은 섞일 수 없는 존재 양태였다. 물론 백신애 역시 활동기와 집필기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동아시아적 루트를 단속적이나마 기록으로 남긴 유일한 작가이다. 이 글은 백신애의 러시아 방랑, 중국 기행과 관련해 각기 다른 시기에 썼던 소설과 산문 등을 겹쳐 읽어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 사이의 지연과 연쇄, 균열과 봉합을 드러내면서, 제국/식민지 체제가 내장하고 있던 모순 자체를 문제 삼고자 한다.간단히 요약하자면 백신애는 교사가 되면서 지역과 중앙을 넘나드는 사회주의 활동가가 된다. 그러나 사회주의 활동을 전심으로 하면서 곧 학교에는 나가지 않게 됐다. 이때 시베리아행이 감행되는데, 이 경험은 이후 원작 소설 「꺼래이」(1934.1-2)와 개작 「꺼래이」(1937), 그리고 일본어 산문 「나의 시베리아행」(1939.4)으로 그려진다. 각기 다른 시기, 같은 경험에 대해 쓰고, 고치고, 회상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단지 모험과 낭만만이 아닌, 그를 초과하는 고난과 사상이 엿보인다. 사실 백신애는 유학과 여행, 그리고 방문 등으로 일본을 많이 다녀왔지만, 이 사회주의 러시아에 비해 제국 일본에 대한 서술은 거의 하지 않는다.오히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등으로 인한 1930년대에 급변한 동아시아의 정치적 상황 속, 식민지 조선과의 비교에서 중국 하층계급과의 관계가 다채롭게 모색된다. 즉 「꺼래이」에서와 「청도기행」(1939.5)에서의 ‘쿨리(苦力)’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그러했는데, 단순한 연대감의 표출에서 복잡한 이질감의 표현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식민지 간 차이를 사유하는 것이며, 제대로 말해질 수 없는 저항을 기대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을 둘러싼 이러한 음각된 반제국의 상상은 끝까지 견지될 수는 없었다.1939년 6월 백신애는 자신을 오래 괴롭히던 소화기암으로 운명한다. 결국 말해지지 못했던, 아직 일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던 상해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에서 그의 얼굴은 이미 병색이 짙었다. 그는 유고로 남은 「여행은 길동무」(1939.7)에서야 사회주의자로서의 자신, 무엇보다 ‘방향전환’ 이후의 고뇌를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고백적 발화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일본인 사회주의자에게로 향했던 것 역시 당대 검열 장을 상기하자면 더 없이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겠다.

영어 초록

白信爱(1908-1939)是一名女性社会主义者,同时又是一名女性作家。殖民地时期,女性社会主义者都是非法的监视对象,女性作家则是在合法的媒体范围内孕育出来的作家。从一开始这两种人是无法融合在一起的。白信爱的活动期和创作期也不是同一个时期。但她是将自己的东亚路线断断续续记录下来的唯一一名作家。本文试图将白信爱在俄罗斯的漂泊、中国的游览与在不同时期创作的小说、散文结合起来共同解读。通过这一过程,揭示这期间被延迟的与有联系的,以及出现裂痕与有粘连的部分,并研究帝国/殖民地体制本身所蕴含的矛盾。总之,白信爱成为教师之后,超越地区和中央的界限,成为一名社会主义活动家。但她的社会主义活动在报纸上报道后,就被赶出了学校。这时,她决定去西伯利亚,后来她的西伯利亚之行在她的小说《高丽》(1934.1-2)和改写的《高丽》(1937),以及在日本语的散文《我的西伯利亚之行》(1939.4)当中都有所描述。在不同的时期写同样的经历,又进行修改,不断回忆这段经历,随着她的思路读下去,会发现字里行间不仅有冒险和浪漫,更有超乎想象的苦难和思想。事实上,白信爱以留学、旅行、短期访问等多种方式去过日本,但不像社会主义的俄罗斯,她几乎没有提到日本帝国。20世纪30年代因满洲事变和中日战争等事件,东亚地区政局发生巨大的变化。白信爱把这一时期殖民地朝鲜与中国下层阶级之间的关系描绘得极为丰富多彩。《高丽》和《青岛纪行》(1939.5)当中对“苦力”的态度变化,就是一个典型的例子。一开始是非常单纯的具有某种共通性的感情表达,后来则变为非常复杂的异质性的感情表达。但这也正说明她是在思考殖民地之间的差异,也是在期待一种无法言语的反抗。但围绕俄罗斯和中国展开的这种反帝国主义想象,却没能坚持到最后。1939年6月,白信爱因长期折磨自己的消化道癌而离开人世。她在还没有受到日本影响的上海留下了最后一张照片。从这张相片中已经明显能看到她的病容。她只有在遗稿《旅行是伴侣》(1939.7)中才写出了作为一名社会主义者的自己,也才提到了自己“改变方向”之后的苦恼。但她的这种自述,是对着日本社会主义者而说出的,如果考虑到当时严格的审查环境,她的这种行为具有非常深远的意义。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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