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代 日本의 采女制度

저작시기 2000.06 |등록일 2019.02.11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13페이지 | 가격 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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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일본학회 수록지정보 : 일본학보 / 44권 / 579 ~ 591 페이지
저자명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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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최근의 여성사 연구에 대한 관심과 발전으로 역사에서의 여성의 역할이 강조됨에 고대사 부문에서도 後宮과 女官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으나 아직도 이에 관한 연구는 부족한 편이고 연구의 소지도 많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야마토(大和)조정의 통일과정에서 지방호족이 貢上한 采女제도의 역사적 기원과 그 의미를 살펴보고 아울러 율령에 나타난 女官으로서의 采女의 규정을 통하여 율령관료체제하의 그 역할과 위치에 대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즉 우네메(采女)제의 역사적 전개를 통하여 大和조정에 의한 고대일본의 통일과정과 율령제국가 형성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가 있을 것이다. 采女制의 기원은 大和조정의 정치적 성장으로 지방호족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즉 호족들에 대한 강압적인 통치는 반란을 야기하고 이는 大和조정이 중앙집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어 그들에 대한 보다 강력한 지배의 방식으로 그들의 자매나 딸을 바쳐 지배종속을 약속케한 인질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게 되었다. 采女는 왕에게 직접 예속되어 일상생활에 대한 近侍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하였으며 때로는 왕과의 관계에서 자식을 낳아 왕실의 구성원이 되고 大和조정과 지방호족간의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大和조정의 통일후에는 畿內출신과 이외 지역 출신간의 차별이 심해지고 율령체제하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농후해졌다. 이에 율령관료제하의 後宮제도가 법제화되면서 천황의 배우자는 황족 및 畿內 유력씨족의 女로 한정한다는 법령이 정해지고 지방출신의 采女는 더 이상 왕과의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라 後宮 소속의 잡역을 담당하는 관료조직 최말단의 존재로 그 지위와 역할이 바뀌게 되었다. 郡별로 징발되어 천황의 식사준비와 이에 관련된 시중을 드는 최하급의 役人이 된 것이다. 그러나 聖武천황기 이후에는 近侍에 따른 은총으로 采女와 그 일족에 대한 敍位·賜姓등이 행해지고 采女 출신으로 고위 女官이 되기도 하여 一族의 관위획득과 家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지역에서 정치, 경제적인 성장을 이룩한 지방호족세력들이 중앙정계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중앙귀족층과의 갈등으로 정계가 불안해지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大和조정에 대해 충성과 복속의 의미로 采女를 貢上하고 지배를 받게 된 지방의 호족세력들은 그들의 정치 경제적 성장과 율령제의 동요로 인한 天平期의 변화를 기점으로 중앙귀족과 조정에 대해 과거 在地首長으로서의 자기의 정체성을 다소 회복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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