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의 『논어(論語)』론 - 『논어사변록(論語思辨錄)』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2019.02.08
최종 저작일
20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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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수록지정보 : 한국사상사학 / 60권
저자명 : 정일균 ( Jeong Il Gyun )

한국어 초록

이 논문은 『논어사변록(論語思辨錄)』에서 표명된 박세당(朴世堂)의 경학사상(經學思想)을 특히 ‘『논어(論語)』의 주요개념에 대한 독자적 해석’과 ‘『논어사변록』에 나타난 경전해석태도’를 중심으로 일별하였다.이를 전제로 『논어사변록』에서 박세당이 보여주고 있는 경학사상의 특징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박세당은 『논어사변록』에서 학문방법론과 관련하여 수사학(洙泗學) 본연의 ‘구체적 실천성’과 ‘능동적 작위성’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특히 ‘『논어』의 주요개념’, 즉 ‘인(仁)’, ‘경(敬)’, ‘중(中)·용(庸)’, ‘학(學)’ 및 ‘정(政)’ 개념에 대한 독자적 해석에서 공통적으로 관철되고 있는바, 이는 곧 당시 조선 학계가 어느덧 노정하기 시작했던 하나의 경향성, 즉 비근하고 절실한 실천은 외면한 채 멀고 심오한 논리에만 매달리는 ‘엽등(躐等)의 폐단’과 아울러 한편으로 인간의 내면적 수양의 문제에다 일차적으로 초점을 맞춤으로써 은연중 이러한 경향성을 조장했던 정주성리학(程朱性理學)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②박세당은 『논어사변록』에서 내용구성과 관련하여 자신의 ‘경전해석태도’를 개진·천명하는 데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곧 ㉠ 그의 경학사상이 정주성리학의 세계관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적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서 ‘대안적 세계관’을 구축하는 단계에까지는 여전히 진전되지 못하고 있었음을 함축하고 있다. ㉡ 그럼에도 그가 자신의 경학세계의 기본방향을 ‘수사학의 지향’으로 정립하는 가운데 일련의 독자적인 경전해석태도를 천명·실천함으로써 당시 조선사회에서 어느덧 교조화의 양상을 보이던 노론(老論)의 주자도통주의(朱子道統主義)에 심대한 균열을 야기했다는 맥락에서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이단적 사상가의 한 명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③ 박세당은 『논어사변록』에서 자신의 경학적 입장과 관련하여 무조건 주자학을 비판·거부하는 것으로 일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경학적 입장은 결코 ‘반주자학(反朱子學)’에 있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요(堯)·순(舜) 이래 전수된바 ‘수사(洙泗)의 가르침’, 즉 ‘공맹(孔孟)의 본지’을 추구한다는 나름의 학문적 문제의식을 수미일관 견지함으로써 특히 정주성리학 역시 상대화하는 가운데 이를 독자적 입장에서 취사선택하는 안목과 역량을 보여준 바 있다. 이로써 그는 조선후기 ‘탈주자학적(脫朱子學的) 경학’의 흐름을 선도했던 실로 예외적인 사상적 거장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 초록

In this paper, Park Se-dang’s thoughts of the learning of Confucian classics are examined briefly, centering around ‘his original interpretations of the main concepts in the Analects of Confucius’ and ‘his hermeneutic attitudes toward Confucian classics’ which are expressed especially in his Noneosabyeonrok(『論語思辨錄』, the Records of Prudent Meditation and Precise Distinction on the Analects of Confucius).On the assumption of this, the distinguishing features of Park Se-dang’s thoughts of the learning of Confucian classics, appearing in his Noneosabyeonrok are as follows: ① In relation to the methodology of Confucian learning, Park Se-dang emphasized ‘concrete practice’ and ‘positive action’ which were deemed to be inherent in Susa Learning(洙泗學, the Learning of Confucius and Mencius in the pre-Qin period) consistently. His stand above mentioned is carried out commonly in his independent interpretations of the main concepts in the Analects of Confucius, such as ‘In(仁, Ren, humaneness or humanity)’, ‘Gyeong(敬, Jing, reverence)’, ‘Jungyong(中庸, Zhongyong, the mean in common practice)’, ‘Hak(學, Xue, learning)’ and ‘Jeong(政, Zheng, politics)’. And his aforementioned interpretations implied criticisms on the one hand against the tendencies of Confucian learning in the late Joseon(朝鮮) dynasty toward holding on to esoteric principles whole-heartedly while neglecting familiar and urgent practices, and on the other hand against the Cheng(程)-Zhu(朱) school which had fostered the above-stated tendencies implicitly through emphasizing the inner cultivation of the mind above all. ② Concerning the contents composition of his Noneosabyeonrok, Park Se-dang layed emphasis on explaining his hermeneutic attitudes toward Confucian classics. This fact does mean not only that his thoughts of the learning of Confucian classics was not yet advanced to the phase of building an alternative world view through the full-scale dismantling and the reconstruction of that of the Cheng-Zhu school, but also that in spite of this he was one of rare heretical Confucian thinkers at his time because he gave rise to serious damage to orthodox Neo-Confucianism safeguarded dogmatically by Noron(老論, the Old Doctrine faction) through his emphasis on the spirit of Susa Learning(洙泗學, the Learning of Confucius and Mencius in the pre-Qin period) and his independent interpretations of Confucian classics. ③ In connection with his position to the learning of Confucian classics, Park Se-dang didn’t criticize and reject that of the Cheng-Zhu school unconditionally and mechanically in his Noneosabyeonrok. In this sense, he wasn’t an all-out antagonist to the Cheng-Zhu school nor a Confucian scholar insisting upon ‘Anti Neo-Confucianism’ at all. He rather was one of initiative and great Confucian thinkers who had led the way to ‘Post Neo-Confucianism’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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