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묘지석의 대명력 사용 문제와 「백제본기」 일식기록의 역일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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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백제학회 수록지정보 : 백제학보 / 26권
저자명 : 김일권 ( Kim Il-gw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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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이 논문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간지역일 일식기록에 반영된 6세기 백제 역법의 특성을 고찰함과 아울러, 1971년 왕릉의 발굴 이래 지난 40년간 한일 고대사학계와 한국과학사학계가 굳건히 믿어왔던 무령왕릉 묘지석의 송나라 원가력(元嘉曆, 445-509, 65년간 행용) 적용 통설이 실상 논리 비약과 일본 고대사학계의 선입견이 낳은 오류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는 당시 무령왕과 직접 책봉외교를 맺었던 양나라 무제의 반포력인 대명력(大明曆, 510.1-589, 80년간 행용)이 사용된 것임을 다각도로 개진한 글이다.특히 성왕 5년(527) 양무제가 대통(大通, 527.3-529.9) 연호로 개원한 바로 그 해에 곧장 대통사(大通寺)란 사찰을 웅천주(공주)에 건립하였다는 기록에서 보이듯이, 양나라와 긴밀한 외교 및 문물교류 관계를 맺어온 백제로서 양무제의 대명력 개력 상황을 충분히 즉시적으로 인지하고 이를 받아들여 사용하였을 것이며, 그 결과가 무령왕릉 묘지석에 새겨진 3곳의 삭간지 역일자료 곧 무령왕 붕어일(523년 5월 병술삭 7일 임진일)과 안장일(525년 8월 계유삭 12일 갑신일) 및 왕비의 개장안장일(529년 2월 계미삭 12일 갑오일)이 지닌 대명력과의 역일 부합으로 나타난 것이라 논증하였다.

영어 초록

This paper examines the calendrical system of the sixth century Baekje kingdom as reflected in the records of solar eclipses in the “History of Baekje” of Historical Records of Three Kingdoms. Therefore, it reexamines the identification issues of calendrical systems that appeared in the burial panels of King Muryeong and his queen. Since the excavation of the royal tomb in 1971, for the past forty years this issue has remained unresolved due to adamant scholarship of the ancient Japanese history or Korean history of science, which insisted upon Baekje's adaptation of the Sung's Epochal Excellence system (Yuan-jia calendar, 445-509). However, a different reality is revealed showing that the dates are more likely based on the Great Enlightenment system (Da-ming calendar, 510-589) of King Wudi of Liang, with whom the Baekje King Muryeong had diplomatic relations of investiture.In particular, the record shows that in the fifth year of King Seong (527) when King Wudi's rule launched under the reign title, Da-ming calendar, Baekje at once established the Monastery of Great Enlightenment in Ongcheonju (present Gongju). Since Baekje was closely related with Liang both in diplomacy and cultural exchanges, its government immediately recognized King Wudi's shift of system, accepted and applied it to its own. For argument this paper suggests three calendrical materials inscribed in the burial panels, namely, the date of King Muryeong's death (523), the date of his burial (525), and the date of queen's interment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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