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 없는 공학 ― 1950-60년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지향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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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수록지정보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 119권
저자명 : 강기천 ( Kang Kichun ) , 최형섭 ( Choi Hyungs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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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이 글은 본격적으로 국가 혁신 체계의 일부로 편입되기 이전 공학 교육의 사정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당시의 공과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은 한국전쟁 이후 전후 복구가 이루어지고 산업화가 진행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공대 졸업생이 한국 사회에서 담당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표출했다. 특히 조선, 철강, 기계 등 아직 한국에 해당 분야 산업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분야를 전공한 공학도들은, 배후 산업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일부 공대 교수들은 자신들의 존재 근거인 공업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한 막연한 이상론으로 미래 비전을 구축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학보 『불암산』 및 각종 매체를 통해 드러난 공학 연구와 교육에 대한 담론은 한국의 공과대학이 기능 인력을 양성하는 직업훈련소와 과학기술 교육 및 연구 기관 사이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모색하려는 모습을 드러내는 자료이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공학도들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원조를 받아 전후 복구 사업을 진행했고, 이를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공과대학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과 유사한 역할을 맡게 되리라는 생각을 품었다. 하지만 서울공대 교수들의 미국화(Americanization) 구상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후발 산업화를 막 시작한 한국의 맥락이 미국의 그것과 달랐을 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대학을 국가 개발 프로젝트의 파트너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과대학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외부의 영향으로 특정한 방향으로 제한/굴절되었고, 한국 사회에서 공과대학의 역할이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과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공과대학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된 것은 오히려 1960년대의 현실과 맞지 않는 지향점을 당시 공과대학이 좇았기 때문이었다.

영어 초록

This article examines the situation of engineering education before it was integrated into the national innovation system by focusing on the College of Engineer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SNU) in the 1950s and 60s. During this period, the faculty members and students of the College of Engineering expressed various opinions on the role engineering graduates should assume within the context of South Korean society undergoing postwar recovery and industrialization. In particular, students in fields lacking mature industry, such as naval architecture, metallurgy, and mechanical engineering, were bound in a dilemma. Moreover, some faculty members of the College of Engineering, with no industry to refer to, tried to construct a vision of the future of engineering based on foreign cases, especially the United States. The discourses on engineering research and education found in Bulam Mountain, the official magazine the SNU College of Engineering and other media show that colleges of engineering in Korea struggled to secure their place somewhere between a vocational school training technical experts for industry and an institute for research and education on “engineering science” training researchers. The SNU College of Engineering began to recover from the damage of the Korean War with U.S. aid, and constructed a vision that SNU will assume a role similar to that of American engineering schools within post-World War II United States. However, the South Korean vision of Americanization was inherently incomplete. Not only was its context of late industrialization vastly different than that of the United States, but also the South Korean political leaders during the 1950s and 60s refused to accept universities as partners in the project of national development. As a result, engineering education in Korea pursued an ideal that was markedly removed from the harsh realities of the South Korean industry of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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