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朱熹)의 스승 이통(李?)을 바라보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시선 -『연평답문(延平答問)』의 간행 및 독서와 이통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중심으로-

최초 등록일
2018.06.06
최종 저작일
20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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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수록지정보 : 한국사상사학 / 58권
저자명 : 오세현 ( Oh Se Hyun )

한국어 초록

『연평답문』은 주희가 스승 이통과 생전에 주고받았던 편지를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이통의 학문과 『연평답문』 에 대해 일찍부터 관심을 보였고, 그 결과 16세기 중반부터 약 1세기 동안 3차례의 조선본 『연평답문』 이 간행되었다. 조선본 『연평답문』 초간본의 간행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이황은 제자들과 이통의 학문에 관해 상당한 논의를 진행했다. 그 중에 오건의 「연평답문질의」는 『연평답문』 에 대한 16세기 중반 조선 사대부들의 독서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영남학파에서는 정구 - 문위 - 이상정 등에 의해 이통의 학문과 『연평답문』 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기호학파에서는 이현익이 「연평답문차어」와 「연평답문요어」를 편찬했다. 이처럼 이통의 학문과 『연평답문』 에 대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관심은 중단 없이 지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연평답문』 의 독서와 그에 대한 결과물인 질의, 차의, 요어 등이 편찬되었다. 이통을 바라보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시선에서 주목할 것은 도통론적 관점이다. 이이는 정이 - 이통 - 주희로 이어진 도학의 전승을 강조했고, 이정구는 이통의 도학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조선에서 모두 이통을 문묘에 종사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영남학파 안에서 전개되었던 이통에 대한 문묘 종사 논의는 배용길과 정경세를 통해 확인 할 수 있고, 송준길은 대사헌으로 재직 중이던 1663년 이통의 문묘 종사를 청했다. 이후 줄기차게 지속되었던 이통의 문묘종사 과정에서 송시열은 송대 도통론의 맥락 속에서 미발기상의 체인에 관해 불교와의 접점을 근거로 이통에 대해 상대적인 평가 절하를 주장했다. 이것은 17세기 후반 이후 성리학적 문명관이 성리학 이외의 사상을 이단시 하는 강한 배타성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되고, 송시열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영어 초록

『Yeonpyeongdapmun』 is the book Zhu Xi compiled the letters what was corresponded with his teacher Yi Tong. The scholar-gentry of Joseon Dynasty concerned early about Yi-Tong’s study and 『Yeonpyeongdapmun』. 『Yeonpyeongdapmun』 was published three times from 16th century through over centuries. Yi Hwang(李滉) who played a key role to publish first Joseonbon(朝鮮本) 『Yeonpyeongdapmun』 discussed in depth about Yi-Tong’s study with his disciples. Oh Gun(吳健)’s 「Yeonpyeongdapmunjilui(延平答問質疑)」 is a classic example that show the scholar-gentry’s reading aspect in the mid-sixteenth century of Joseon Dynasty. Jung Gu(鄭逑), Mun Wi(文 緯) and Yi Sang-jung(李象靖) who were member of Yeongnam(嶺南) academic groups had continued attention about Yi Tong’s study and 『Yeonpyeongdapmun』. Yi Hyunik(李顯益) who was a member of Giho(畿湖) academic groups compiled 「Yeonpyeongdapmunchaeo(延平 答問箚語)」 and 「Yeonpyeongdapmunyoeo(延平答問要語)」. The scholargentry’s attention about Yi Tong’s study and 『Yeonpyeongdapmun』 had been continued constantly in Joseon Dynasty. The emphasis of the scholar-gentry’s way looked at Yi-Tong is the point of view of the Genealogy of the Confucianism. Yi Yi(李珥) emphasized the transmission of Dohak(道學) through Jung Yi(程?) - Yi Tong - Zhu Xi. Yi Junggu(李廷龜) criticized that Yi-Tong had not being enshrined to the Policies of the National Confucian Shrine. The controversy about Yi-Tong’s enshrinement of Confucian Shrine unfolded in Yeongnam(嶺南) academic groups is represented by Bae Yonggil(裵龍吉) and Jung Gyungsae(鄭經世). Song Jungil(宋浚吉) requested Yi-Tong’s enshrinement of Confucian Shrine in 1663. The request of Yi-Tong’s enshrinement of Confucian Shrine constantly continued. Song Siyeol(宋時烈) asserted the relative devaluation of Yi Tong in the context of ‘Dotong Theory(道統論)’ in Song(宋) dynasty about Mibalgisangchein(未發氣象體認). It can be comprehended as the confucian view of civilization rejected the thought except Neo-Confucianism in the late 17th century, and many scholars after Song Siyeol continually asserted the strong exclusion of Neo-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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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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