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주미사지(舟尾寺址)와 신라의 웅주(熊州)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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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수록지정보 : 백제문화 / 58권
저자명 : 김창석 ( Kim Changse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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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舟尾寺址에 있던 사찰은 통일신라 시기에 초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절은 17세기 말 이후 어느 시기엔가 폐사되었다. 672년 신라가 所夫里州를 설치하고, 같은 해 白衿誓幢을 조직한 것으로 보아 소부리주는 군사 거점의 성격이 강했다. 신라는 이후 神文王6년까지 熊川州, 完山州, 武珍州를 설치하고, 그 관하에 2小京, 38郡, 103縣을 두어 백제 고지를 통치했다. 웅천주 지역을 살펴보면, 백제 사비기의 지방행정구역은 신문왕이 설치한 郡縣級의 행정구역과 비교하여 큰 변동이 없었다. 백제 말의 城級행정 단위는 신라의 지방제도가 시행되면서 縣으로 개편되는 것, 郡또는 小京으로 승격되는 것, 그리고 縣이 되지 못하고 城村으로 남는 세 경로를 거쳤다. 백제 말의 200개 城이 신문왕대 이후 103개의 縣으로 개편된 배경에는 신라 州의 성격 변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웅천주의 州治가 변하지 않은 사실은 초기의 군사적 주가 아니라 廣域州였음을 시사한다. 광역주는 관내의 행정구역 간 위계가 분명하고 조직체계가 유기적으로 운영될 수 있으므로 縣과 같은 하위 행정단위는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縣으로 재편되지 못한 절반 정도의 성, 촌이 지방의 기층 조직으로 남아서 자연 촌락을 통솔하는 중심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주미사지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銘文石片의 남성 인물들은 眞骨출신이라고 보이고, 일족이 王京에 살다가 熊州로 이주했다. 金良武는 주치의 州助혹은 직속 縣의 장관이고 金奉昌역시 웅주의 지방관으로 복무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양무의 부인과 김봉창의 부인은 出家하여 ‘阿尼’, 즉 비구니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大邱戊戌塢作碑가 주목되는데, 종래 阿尺干이라고 판독한 것은 ‘阿尼’라고 읽어야 한다. 오작비에 보이는 慧藏은 비구니로서 도유나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대구 지역의 匠人을 이끌고 수리시설 축조에 참여했다. 주미사지 출토 명문석편에 보이는 두 夫人역시 웅주 지역에서 종교, 신앙의 차원을 넘어서는 영역에서 활동했으리라 여겨진다.

영어 초록

Silla established Soburi-ju in the capital city of Baekje and organized a new corps with the remnants of Baekje in 672. This iss why Soburi-ju is believed to have had a military function. Afterwards, Silla established other Ju(州. Prefecture)s by 6th. year of King Sinmun’s reign, where 2 secondary capitals (小京), 38 districts(郡), and 103 counties(縣) worked in order to rule the ex-Baekje people. The change in the feature of Ju lay in the background where 200 Seong(城)s were reorganized into 103 counties. For example, Woongcheon-ju was implemented as a regional administrative prefecture that did not have to have as many counties as the prefectures did in Baekje. Over the half of the Seongs and Chon(村)s that were not raised to counties played a great role in controlling the villages around them. The Buddhist temple built in current site of Jumisa(舟尾寺) appears to have founded in the Unified Silla period. According to the inscription found in this ruin, the family members were from Jingol(眞骨. True bones) status, who moved to Woong-ju area from the capital city. Two women were Ani(阿尼), which means a female Buddhist monk(比丘尼). An additional example of Ani was confirmed on Musul-Ojak stele(戊戌塢作碑). She led the craftsmen to build a levee. These materials indicate that female Buddhist monks were engaged in various jobs in addition to their religious duties, which could facilitate the policy of ruling the remnant people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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