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許筠)의 양명좌파(陽明左派) 수용에 대한 재론(再論) -『을병조천록(乙丙朝天錄)』을 중심으로-

최초 등록일
2018.02.06
최종 저작일
20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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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수록지정보 : 한국한문학연구 / 68권
저자명 : 신향림 ( Shin Hyang-rim )

한국어 초록

이 논문은 허균의 마지막 시집인 『을병조천록』을 중심으로, 허균의 양명좌파 수용 여부와 수용 시기를 고찰한 것이다. 논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친상에 기생과 어울려 불륜을 저질렀다는 기록은 政敵인 李弘老가 만들어낸 중상모략에 기반한 것으로 허균의 실제 행적과 일치하지 않는다. 허균은 위선적인 예교를 거부하기는 했지만 인간의 도덕 감정을 드러내는 형식인 예 자체는 존중하였다. 둘째 허균은 陽明左派 李贄의 저작을 1608년 부안 은거기 이전에 접하였고, 이지의 사상과 문학을 지지하였다. 허균은 부안 은거기 무렵부터 「豪民論」, 「南宮先生傳」 등 혁신적인 사유와 파격적인 형식을 지닌 작품을 집중적으로 창작하였다. 셋째 李植은 허균을 양명좌파 문인이자 『洪吉童傳』의 저자로 기록하였는데, 이는 직접 목도한 사실에 근거한 신뢰할 만한 기록이다. 이식은 허균이 부안에서 은거하고 있을 때 허균과 교유가 있었는데, 허균의 의식이 이지의 영향으로 격변하고 있던 시기에 허균의 언행을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글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중요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넷째 허균은 前後七子의 擬古 문학이 아닌 양명좌파의 革新적인 문학을 지지하였다. 허균 자신의 술회에 따르면, 허균의 시는 세 번의 변화를 겪었는데, 의고적인 문학에 경도되었던 시기는 젊은 시절에 국한된다. 허균이 40대 이후 지향한 문학은 양명좌파의 영향을 받은 공안파 문학에 가까운 것이었다. 다섯째 허균은 유가의 太極論을 부정하고 太極, 形氣를 초월한 老佛의 道를 세계의 근원으로 보았고, 聖人과 凡人, 儒敎와 老佛, 中國과 夷狄의 구분이 무화된 세계를 지향하였다. 결론적으로 허균은 古人, 성인, 유교, 중국을 추종하는 비루한 광대의 삶을 버리고 자유와 혁신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 豪傑이었다.

영어 초록

This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whether and when Heo Gyun accepted the Left Wing of Yang-ming School with a focus on his last collection of poems Eulbyeongjocheonrok(乙丙朝天錄). The major findings of the study were as follows:first, there is a record saying that he committed adultery with a Gisaeng during the mourning period of his deceased mother. It is not a fact but a slander created by his political opponent Lee Hong-ro(李弘老). Even though Heo refused to follow the hypocritical teachings about courtesy, he did respect courtesy itself as a system of revealing man's moral emotions. Second, he read the works of Lee Ji(李贄), a thinker in the Left Wing of Yang-ming School, before 1608 when he went into retirement in Buan and supported his ideas and literature. During his retirement years in Buan when he became familiar with the ideas of Lee Ji, he created an intense collection of works characterized by individual thinking and unconventional forms such as Hominron(豪民論) and Namgungseonsaengjeon (南宮先生傳). Third, Lee Sik wrote that Heo was a literary figure in the Left Wing of Yang-ming School and the author of Hong Gil-Dong Jeon(洪吉童傳), which was based on the facts he witnessed himself. He had exchanges with Heo during his retirement years in Buan. Since he witnessed first-hand the words and acts of Heo when his consciousness underwent rapid changes under the influence of Lee Ji, he was able to leave records not found in the books of others. Fourth, Heo supported the reform literature of the Left Wing of Yang-ming School instead of the classical literature of Jeonhuchilja(前後七子). His literature went through three major changes. The period of his admiration for the classical literature was limited to his younger years when he learned poetry from Lee Dal(李達) and Heo Bong(許?). The literature he was oriented toward since he became 40 years old was closer to the literature of the Gongan School influenced by the Left Wing of Yang-ming School. Finally, he denied the Taegeuk(太極) theory of Confucianism and found the origin of the world in the truth of Lao-tzu and Chuang-tzu and Buddhism beyond Taegeuk and Hyeonggi. He sought after a world where there were no boundaries between saints and common people, between Confucianism and the ideology of Lao-tzu and Chuang-tzu and Buddhism, and between China and the barbarians. In short, Heo Gyun was a revolutionary literary figure that pursued truthful and original literature after giving up his life as a low clown following the dead, saints, Confucianism, and China.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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