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기 근대국가형성의 세 가지 구상

저작시기 2010.05 |등록일 2017.11.10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23페이지 | 가격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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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21세기정치학회 수록지정보 : 21세기정치학회보 / 20권 / 1호
저자명 : 김동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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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이 논문은 대한제국기에 전개되었던 근대국가형성 시도의 여러 형태들을 검토하고 그럼으로써 그 시대의 역사적 위상을 평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시의 정치적 갈등과정과 더불어, 사회운동과 계몽운동들은 근대적인 제도들의 형성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는데, 그것들은 다시 근대 국가 형성이라는 목표로 수렴되었다. 대한제국기의 주된 정치적 행위자들은 왕, 개화지식인 및 관료들이었으며, 이들의 정치적 노선은 근대국가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동질적이지만 누가 주도하는 근대국가냐를 기준으로 왕이 주도하는 노선과 개화지식인 및 관료들이 주도하는 노선으로 나눠진다. 하지만 이 두 노선은 모두 국민이 배제된 근대국가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는다. 여기에 근대국가를 추구했으면서도 근대국민국가를 추구했던 신민회가 존재한다. 이 노선은 근대국가를 국민의 형성을 통해 달성하려했다는 점에서 앞의 두 노선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제국이라는 형태를 통해 근대국가를 달성하려했던 광무황제의 시도 자체는 세계사적 시간대와 커다란 간극을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추구했던 국민의 형성 자체를 아예 배제했다는 점에서 광무황제의 근대 국가 구상은 상당한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개화와 계몽을 주창했던 지식인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이들 또한 국민을 동원의 대상 내지 배제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보장해 줄 제한적인 의회제의 도입을 추구했을 뿐, ‘주권을 가진 국민에 의해 구성되는 정치체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많은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 또한 국민의 형성을 배제했던 것이다. 이처럼 근대국가형성을 둘러싸고 진행되었던 황제와 지배층, 황제와 개화와 계몽 지식인들 간의 투쟁과 분열에 따른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서 국가가 붕괴할 무렵, 근대국민국가형성을 지향하는 시도가 나타났다. 신민회와 대한매일신보의 근대국가형성노선은 주권을 지닌 인민, 국민, 민족을 명시적, 묵시적으로 주장하면서 국가에 대한 대안으로 동포애, 국수, 국가 정신, 정신으로 된 국가와 같은 개념과 은유를 확산시켰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이후 전개될 근대국민국가형성운동의 기반을 마련했던 것이다.

영어 초록

This article examines three conceptions of modern state formation in Taehan Empire in terms of transition to the modern society and evaluate its historical character. Not only political conflicts but also social movement and enlighten movement occurred in this period were to set modern institutions and eventually articulated to modern state formation. Main actors of this period were King, enlightened intellectuals and bureaucrats. Their political lines shared its commoness which excluded nation or people in pursuing modern state, but were differed by who took the initiative in making modern state. But Shinminhue decisively differed from previous two lines in that it pursued modern nation-state in modern state making. Kwangmu emperor's trial to make modern state through the form of empire did not lag behind with other empire states in late 19th century. However, Kwangmu emperor never dreamed nation-making which other empire states at least pretended to. Enlightened intellectuals and bureaucrats in late 19th century also never dreamed to nation-making. Rather, they regarded people as just means of mobilization or objects to be excluded in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They wanted to introduce the assembly with privileged orders and never thought the political system constituted by people with sovereignty. After all trials to make modern state were in vain, the movement to pursue nation-state appeared around 1907-8. Shinminhue tried to make nation which has a sovereignty, spirit and essential mind to build state in modern society. It claimed that, although Korean lost its sovereignty, people or nation which have a spirit of sovereignty would rebuild or remake state in some time. And this line found the corner stone of modern state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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