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수호조규 부속조약의 재검토

저작시기 2017.08 |등록일 2017.10.01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37페이지 | 가격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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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일관계사학회 수록지정보 : 한일관계사연구 / 57권
저자명 : 김흥수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조일수호조규와 미야모토 오카즈
3. 수호조규부록과 무역장정의 체결
4. 미야모토 이사관 파견의 이면
5. 미야모토와 하나부사의 조선정책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한국어 초록

조일수호조규가 체결된 6개월 뒤인 1876년 8월에 이사관 미야모토 오카즈(宮本小一)와 강수관(講修官) 조인희(趙寅熙) 사이에 ‘수호조규부록’과 ‘무역장정’ 등 수호조규의 부속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미야모토 이사관이 조인희에게 서신을 보내는 형태로 ‘무관세 무역’이 규정되었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이 무관세 무역과 ‘무역장정’에서 규정한 개항장에서의 일본 화폐의 통용 등이 조일수호조규의 편무적 영사재판권과 함께 대표적인 불평등 조항으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무관세 무역’은 무역 확대를 도모한 일시적 조치였고 양국의 무역에서 결제는 조선동전(상평통보)으로 이루어졌다.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는 일본 상인 간에 통용되었을 뿐이며, 조선 내지에서 일본 화폐가 통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 상인은 결제 수단으로 조선동전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기존의 연구는 ‘불평등성’을 강조한 나머지 부속조약의 일면만 과도하게 부각하여 수호조규 부록의 전체상을 그리는데 한계를 드러냈다. 현재의 일반적 인식과 달리 부속조약을 체결한 미야모토 이사관은 고종을 알현한 최초의 일본인으로 『만국공법』 등 많은 신서적을 가져와서 조선 정부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미야모토는 교섭과정에서 조선과 타협하려는 태도를 보여 조선에서 반대하는 공사 주경(公使駐京)과 내지통상(內地通商)을 강요하지 않았다. 개항장 선정에서도 무역의 번성에 초점을 두고 조선과 타협하려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의 정치적 전략적 가치에 주목한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의 조선정책과 여러모로 대비된다. 하나부사는 러시아와 청의 견제라는 전략적 목표에 따라 원산과 인천의 개항을 고집하였으며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를 도모하기 위해 공사 주경을 일방적으로 관철시켰다. 하나부사의 강경책은 임오군란을 불러오게 되고 그 결과 하나부사의 조선정책은 파탄을 맞게 되었다. 임오군란 이후 곤도 마스키(近藤眞鋤) 대리공사는 미야모토가 조선의 인망(人望)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하나부사 공사의 후임으로 천거하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조선과의 관계보다 청과의 관계를 우선하여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를 후임 공사로 임명하였다. 임오군란이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임을 고려할 때, 하나부사의 조선정책과 대비되는 미야모토의 조선정책은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영어 초록

In August 1876, Miyamoto Okadzu, the commissioner of Japan, and Jo In-hee, the Chief Delegate of Joseon, signed on the Additional Articles and Trade Regulations of the Japanese-Korean treaty. Additionally, a duty-free agreement was fixed in the form of an official letter from Miyamoto to Jo In-hee.
Previous studies often consider the duty-free trade and permission to Japanese currency in open ports as a typical unequal article among the Japanese-Korean treaty, along with the unilateral consular jurisdiction. However the duty-free trade was a temporary deal to promote trade commerce, and the trade settlement was made by Joseon coins (Sangp’yŏngt’ongbo). Japanese currency were solely received by Japanese merchants, restrictively in the open ports, since Korean merchants, who’s business was mainly intended for the interior, preferred Joseon coins. Previous studies which emphasizes the ‘inequality’ of the Japanese-Korean treaty in 1876, tend to miss the overall aspect of the Additional Articles and Trade Regulations.
Miyamoto Okadzu was the first Japanese diplomat who had audience with King Gojong. And contrary to popular conception, at that time, Miyamoto brought several new books such as Elements of International Law, which Joseon government readily accepted. Moreover, Miyamoto took a conciliatory stance during the negotiation between Japan and Joseon. He was aware of the fact that Joseon government opposed to accept controversial issues, such as Seoul-based legation or allowing trade at the inland area. He also discussed open port candidates in terms of promoting trade commerce. Miyamoto’s stance are well contrasted with Hanabusa Yoshimoto, who mostly focused on the political and strategic value of Joseon.
Hanabusa determined to open Wŏnsan and Inch’ŏn to check Russia and China’s influence, and unilaterally pushed Seoul-based legation to extend political influence over Joseon. This hard-line caused Imo Military Rebellion(Military Riot of 1882), which halted Hanabusa’s policy towards Joseon.
After the Imo Military Rebellion, acting minister Gondo Masuki recommended Miyamoto Okadzu as successor, by reason of his popularity among Joseon. However Japanese government appointed Takejoe Shinichiro upon consideration of relations with China than Joseon. Considering that Imo Military Rebellion frustrated the effort Joseon made to modernize autonomously, Miyamoto’s policy towards Joseon which in contrast to Hanabusa’s, is necessary to reass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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