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회 김영근의 삶과 시세계 - 영물시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2017.09.12
최종 저작일
20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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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열상고전연구회 수록지정보 : 열상고전연구 / 58권 / 209 ~ 242 페이지
저자명 : 김기림

한국어 초록

본 논문은 개화기 및 일제 강점기 초의 강진 유림이었던 景晦 金永根이 남긴 영물시를 고찰하였다. 경회는 1865년 강진에서 태어났다. 吾南 金漢燮과 重菴 金平默을 사사했다. 이들은 華西 李恒老의 衛正斥邪 정신을 계승하였는데 경회도 이를 적극 받아들여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으로 삼았다. 을사늑약 및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후 이주 목적 또는 항일 활동 목적으로 간도에 갔으나 잠시 머물렀을 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신흥리에 학사를 열고 후학을 가르쳤다. 한편 人道公義所 와 같이 유교 부흥을 목적으로 설립된 모임에 적극 참여했다. 경회가 이런 활동을 한 것은 유림으로 자처하며 유교를 수호하고 유학적 소양을 지닌 후학을 양성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모두 1,527수이고 그 중 약 140여 수가 영물시이다. 그의 詠物詩는 서양과 일본을 배척하는 위정척사 정신과 존화 의식을 담고 있다. 또한 당시 조선을 배반하고 참혹한 백성들의 삶에 고통을 가중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여 자신들의 책임을 放棄했던 조선 대신과 지방 목민관들을 준엄하게 비판하였다. 더 나아가 서양 및 일본에 의해 夷化하여 윤리가 타락하고 이익 추구가 만연한 사회에 대해 비판적 의식, 자각, 분별력 없는 일반인들에 대해서도 질타했다. 경회는 사회, 세태에 대한 비판의 준거를 자신에게도 엄격하게 적용하여 세상에 도움이 되지 못했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신을 비판하면서 부끄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유림으로서의 정체성을 견지하기 위한 자기 警戒 및 단속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러한 경회 영물시는 영물시 영역 안에 위정척사와 존화 정신 및 자기 반성 등의 내용을 확장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척사 정신을 읊음으로써 당시 유희적, 친일적인 한시 풍조에 저항했고, 오랑캐 공간으로 변한 조선 사회에 대한 문학적 저항을 보여주었다.

영어 초록

This study speculated on 'Youngmul' Poetry by Gyeonghoi Kim Young-Geun who was a Confucian scholar in Gangjin during the flowering time and the early Japanese Colonial Period. Gyeonghoi was born in Gangjin in 1865. He was taught by Onam Kim Han-Seop and Jungam Kim Pyong-Mook. The teachers succeeded to the Wijung Chuksa(defending orthodoxy and rejecting heterodoxy)’ developed by Hwaseo Lee Hyang-Ro and Gyeonghoi accepted it actively and considered it as a lifelong motto. After the Eulsaneukyak and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were completed, he moved to Gando for migration or anti-Japanese movement, but he stayed there for a while and came back to his hometown. Then, he opened an academy to teach junior scholars. Meanwhile, he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group which was aimed at rehabilitation of Confucianism. It was derived from this intention to protect Confucianism and nurture junior scholars with Confucian knowledge. He wrote a total of 1,527 poems of which about 140 were verses on natural things. His 'Youngmul' Poetry was intended to expel western power and Japan and preserve Wijung Chuksa and Chinese civilization. Also the verses criticized federal ministers and local governors who betrayed Joseon, imposed pain on the tragic life of people and abandoned their responsibility to care the people. Furthermore, he criticized the society which abandoned ethics and pursued only profit and the common people who were unaware of terrible social condition without critical mind. Gyeonghoi stuck to strict standards of criticism against society and the prevailing state of society and was ashamed of himself as he was not helpful for society and did not anything for society. Therefor, he firmly controlled himself to maintain his identity as a Confucian scholar. His 'Youngmul' Poetry has meaning in that it contains Wijung Chuksa, respect for Chinese civilization and self-reflection in his poetry. As he recited the Wijung Chuksa mind to resist against the trend of pro-Japanese Chinese poetry, he was also considered as a literary resistant against Joseon society which was changed into barbarian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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