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干涉期性理學의 高麗流入과 止浦金坵의 역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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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7.06.14
- 최종 저작일
- 20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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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ㆍ발행기관 : 한국중국문화학회
ㆍ수록지정보 : 중국학논총 / 53권
ㆍ저자명 : 김병기
목차
Ⅰ. 緖論
Ⅱ. 고려 중기, 북송 성리학 유입의 가능성 傍證
Ⅲ. 止浦金坵의 大都行과 當時中國의 儒學환경
Ⅳ. 止浦와 王鶚의 교류 가능성과 王鶚의 정치·학문적 위치
Ⅷ. 結論
한국어 초록
고려는 개국 초기부터 사상적으로 불교와 도교는 물론 풍수, 圖讖등 재래사상
과 유학을 넓게 수용하여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고 민심 수습을 꾀했다. 이러한 까
닭에 흔히 고려 전기를 儒·佛·道三敎의 융합시대라고 말한다. 불교는 종교적인 영
역에서 백성들의 안정된 삶을 고양하였으며, 유교는 정치와 교육 측면에서 질서를
잡고 통치의 원리를 제공하였고, 도교는 天文, 地理. 陰陽, 醫藥등 자연과학적인
영역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영어 초록
鑒於性理學傳入韓國的時期,有學者主張是北宋時期,也有部分學者對此持
否定意見,指出是南宋時期經由高麗末期的安珦傳入韓國。筆者認爲與其說是
某一時期由特定人物將性理學‘導入’韓國,不如說是時代潮流下諸多人士關心
與努力的結果,這一自然而然的‘流入’說更爲妥當。本文以此爲前提,指出止
浦金坵正是奠定性理學‘流入’礎石的代表性人物,並對此加以論證。
本文首先考察了止浦金坵初赴大都時中國的儒學即性理學的具體展開情況,
其次對元朝儒臣王鶚這一人物進行了了解,不管是采取何種方式,總之王鶚與
止浦之間有著交流,論文對其在學問上直接或間接影響止浦的可能性進行了判
斷。通過以上的考察與辨析。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