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금마세력과 서동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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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수록지정보 : 마한백제문화 / 28권
저자명 : 김주성 ( Kim Joo-s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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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7세기 금마지구의 개발을 이끈 세력이 누구였을까. 미륵산 북쪽 능선상에서 발견된 성남리고분의 피장자들을 주목하였다. 그 이유는 지방토착세력으로 횡혈식석실분을 받아들인 입점리고분이나 웅포리고분의 피장자들과는 달리 성남리고분 피장자들은 중앙 세력인 사씨가 금마로 진출하면서 고분을 축조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일연의 사료서술 방식을 살펴보았다. 일연은 삼국사기와 고기의 기록을 가장 신뢰하였다. 고기의 기록을 기반으로 무왕조를 서술하였으며, 삼국사기의 기록을 기반으로 법왕금살조를 기술하였다. 이 기록을 남기면서 일연은 왕흥사와 미륵사를 혼동하여 기술해 놓았음을 확인해 보았다. 이어서 혜왕 기록의 특수성을 찾아내고 혜왕이 실제로 즉위하지 않고 추존되었을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위덕왕 사후 불안한 정치정세에 즉위한 무왕을 도와 금마지구를 개발한 세력으로 사씨세력을 주목하였다. 무왕은 두 번의 혼인을 사씨와 하였다. 익산 쌍릉은 이 두 명의 왕비가 묻힌 것으로 파악하였다. 먼저 조성된 소왕묘에는 선화공주로 대표되는 사씨가 주인공이며, 대왕묘의 주인공은 사탁적덕의 딸로 파악하였다. 의심의 눈길을 거두기는 어렵지만, 대왕묘에서 발견된 4개의 치아가 여성이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와 함께 무왕 30년 이후 금마의 중요성이 격하되고 있는 사실과 함께 의자왕 대 왕궁리의 궁성이 사찰로 변화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해볼 때,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두 명의 무왕 왕비가 같은 사씨이면서도, 권력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의자왕은 무왕 3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의자왕은 재위 2년에 무왕 후비의 사씨세력에 대한 제거작업을 시행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영어 초록

Who led the development of the 7th century Geumma district? I noticed the founders of Seongam-ri tombs found on the ridge north of Mireuksan. The reason for this is that unlike the Imjeom-ri tombs or of the Ungpo-ri tombs, which were used as the local indigenous forces, they were considered to have built up tombs when Sa, a central power, advanced to Geumma. Then we looked at the way of describing historical data Ilyeon trusted records of Samguksagi and Old record. Based on the records of Old record, he described the Mu king data, and based on the records of the Samguksagi, he described the Bum king data. I have confirmed that Ilyeon confused Wanghungsa and Mireuksa through this record. Then I pointed out the specificity of the Hye king records and pointed out the possibility that Hye king was actually not crowned. And I pay attention to the forces of Sa forces that developed the Geumma in order to help the Mu king who was crowned in the unstable political situation after the death of Wudok king. Mu king has married twice with Sa. These two queens were buried in Iks an Ssangnung. In the small royal tomb, Sa, the main character of the Princess of the Sunhwa, was buried. In the big royal tomb, the daughter of Satak-zukduk, the queen of Mu king, was buried. It is hard to believe, but it is noted that the four teeth found in the big royal tomb were female`s. In addition, considering the fact that the significance of the Geumma has been downgrading since the 30th year of Mu king, and that the royal palace in Wanggung-ri was transformed into a temple, it is highly probable Two of the queens were fighting a power struggle, even though they were the same Sa. As a result, Wyja king was appointed as a Prince until the 33rd year of Mu king, and the Wyja king removed Sa.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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