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문 > 미쉘 푸코 : 얼굴 없는 글쓰기의 에토스

저작시기 1999.01 |등록일 2003.07.10 | 최종수정일 2016.07.17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19페이지 | 가격 5,400원
다운로드
장바구니관심자료
상세신규 배너

* 본 문서는 배포용으로 복사 및 편집이 불가합니다.

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수록지정보 : 시대와 철학 / 10권 / 2호
저자명 : 김성우(Kim Seong Woo)

없음

한국어 초록

바깥의 사유와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푸코는 글쓰기를 결과가 아닐 "실천"으로 규정한다. 실천으로서의 글쓰기는 "표현"이라는 테마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런 까닭에 글쓰기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재성의 형식으로 파악되지 않고 자신의 전개된 외재성과 동일시된다. 이 말을 푸코는 두 가지로 해석한다. 우선 이것은 글쓰기가 시니퍼에의 내용보다는 시니피앙의 성격에 의해 질서 지워진 기호들의 놀이를 의미한다. 이 기호의 내재성에 초점을 맞춘 사람들이 바로 형식주의자와 구조주의자인 것이다. 푸코가 보기에 이들은 모던적 주체의 내재성을 극복하려고 했지만 다시 기호의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글쓰기가 받아들인 규칙인 랑그에 머물고 만다. 반면에 푸코는 전개된 외재성으로서의 글쓰기가 자신의 규칙을 위반하고 전도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언급한다. 이는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아닌 타자에 관심을 갖고 타자에 대해서 글을 쓴다. 여기서 타자란 나눔의 논리에 의해 배제되어 바깥으로 밀려난 것들을 의미한다. 예컨대 광기, 질병, 범법, 과학의 지위를 얻지 못한 앎, 성 등이다. 푸코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인 바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서 글쓰기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한계를 체험하는 글쓰기는 바깥으로부터 사유하고 체험한다. 이처럼 푸코는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글쓰기를 가면놀이의 장으로 삼는다. 여기에서 언어는 글쓰는자를 구속하는 감옥이 아니라 한계를 시험해보는 마당이 된다. 이러한 마당에서 글쓰기는 얼굴을 가지려는 시도가 아닌 얼굴을 바꿔보려는 가면놀이이며 더 나아가서 얼굴을 갖지 않으려는 자살 행위이다. 이 자살은 인간의 죽음이며 글쓰는 자의 죽음이다. 하지만 이 말들로 인해 푸코를 구조주의자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까닭에 푸코는 주체 일반을 거부한 구조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단지 주제에 대한 선험적 이론을 거부한 것이다. 그가 희망한 것은 수세기 동안 부과되어 온 개별성의 유형을 거부함을 통해 "주체성의 새로운 형식들"을 실험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바로 이러한 실험이다. 글쓰기를 통해 그는 다른 존재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이는 니체의 "나인 나"가 되려는 실존의 미학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

구매평가

판매자에게 문의하기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ㆍ다운로드가 되지 않는 등 서비스 불편사항은 고객센터 1:1 문의하기를 이용해주세요.
ㆍ이 자료에 대해 궁금한 점을 판매자에게 직접 문의 하실 수 있습니다.
ㆍ상업성 광고글, 욕설, 비방글, 내용 없는 글 등은 운영 방침에 따라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문의하기

판매자 정보

본 학술논문은 한국학술정보(주)와 각 학회간에 저작권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AgentSoft가 제공 하고 있습니다.
본 저작물을 불법적으로 이용시는 법적인 제재가 가해질 수 있습니다.

상세하단 배너
우수 콘텐츠 서비스 품질인증 획득
최근 본 자료더보기
상세우측 배너
&lt; 논문 &gt; 미쉘 푸코 : 얼굴 없는 글쓰기의 에토스
페이지
만족도 조사

페이지 사용에 불편하신 점이 있으십니까?

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