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蘇軾) 특집 1 : 논문 ; 최치원의 재당 (在唐) 생애에 대한 소고

등록일 2003.07.10 | 최종수정일 2016.07.20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22페이지 | 가격 5,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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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영남중국어문학회 수록지정보 : 중국어문학 / 10권
저자명 : 허권수 ( Kweon Soo Heo )

없음

영어 초록

長慶年間, 唐朝欲以夷制夷, 始說寶貢科, 可使邊方異民族參與於唐朝之政治. 是故, 多施惠於新羅遊學生. 新羅亦掃法六頭品勢力之不平, 廣開渡唐遊學之門戶. 因此, 新羅遊學生多受惠於新羅與唐. 崔致遠乃新羅末渡唐遊學生之一也. 十二而渡唐, 十八而登於賓貢科, 以後十七年間仕于唐. 登料而未釋褐時, 寓居洛陽, 筆作飯襄. 厥後除漂水縣尉, 職位與祿俸俱適於意. 然, 三年後 辭縣尉, 擬將赴宏詞料, 蓋爲得高位以展其蘊蓄也. 然財力不及而未果. 因託高騈爲待御使, 專擔官府文書之撰. 是時也, 弘揚其文名, 由是, 得高騈之信又俸祿頗曉, 唯文筆是可勉. 如此生活, 傍人見之, 以大榮達, 崔致遠則中心常懷鄕愁, 切慕父母 故無日不思故國. 因之, 欲將其不能施於唐之抱負, 移施於新羅, 二十八而歸于新羅. 留唐時, 想相與契交者不鮮矣, 然其遺文多代高騈而製者故, 無以追考, 可考者, 唯羅隱·顧雲等數三人而已矣. 崔致遠對于高句麗·百濟·渤海, 全無同族意識, 反以高句麗·百濟爲唐之巨壽. 於渤海則敵對感尤劇, 可知其意識之如何. 崔致遠終不覺唐之以夷制夷之譎計, 不免爲唐所使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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