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자료(考古資料)로 살펴 본 원(元)과 탐라(耽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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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수록지정보 : 탐라문화 / 52권
저자명 : 김경주 ( Kim G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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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1273년 삼별초 평정후 제주에는 원나라 군사가 주둔하고 官人과 牧人 등이 대거 이주하면서 다양한 元式文化가 도입되기 시작한다. 먼저 법화사는 1269년 중창을 시작하여 원왕실의 도움으로 1279년 완공되었다. 원왕실의 적극적인 중창 개입은 남송과 일본 정벌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종교적 기원처이자 願刹의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법화사에는 매우 이국적인 특수건물지가 세워졌는데 정교하게 가공된 석재와 원나라 형식의 기와를 얹어 조성하였다. 이 건물은 원나라 왕실 건축 기술자들이 제주에 입도하여 축조한 元式 건축물에 해당하며 元順帝의 피난궁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왜냐하면 특수건물지에 사용된 龍鳳文 막새는 원의 瓦匠에 의해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왕실을 상징하는 유일한 문양이기 때문이다. 제주 서남부 지역은 원과의 물류수송을 위한 포구가 위치하고 있고 원왕실의 수요가 많았던 香樟木의 최대 군락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게다가 이곳은 원나라 이주민과 원왕실 후손들의 유배지로도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강정 대궐터와 주변지역이 바로 그들의 생활 터전이었으며 인접한 하원동 왕자묘는 伯伯太子 일행의 분묘일 가능성이 높다. 법화사를 중심으로 하는 서남부 지역은 원나라가 동아시아의 영토확장을 위한 군수산업기지와 물류생산지로 활용하였다. 이로 인해 원나라 이주민들의 據點聚落이 형성되었고 원순제의 피난궁전이 축조되기도 한다. 원이 멸망한 후에도 왕실 후손들의 유배와 이주민들이 유입됨에 따라 考古學的 원식문화가 지속적으로 잔존하게 된다.

영어 초록

After the Sambyeolcho Rebellion was suppressed by the Goryeo and Mongol Yuan dynasty in 1273, Mongolian style was introduced to Jeju as Yuan cavalry started to be stationed in Jeju and massive number of Mongolian officials and stock breeders came to the island. Goryeo began rebuilding Fahua(法華) Temple in 1269 and the construction was completed in 1279 with a help of the Yuan Palace. Yuan benefited from its intervention in the rebuilding. The temple was a religious place to successfully conquer the Southern Song Dynasty and Japan. There is a very unusual structure decorated with delicate stones and Mongolian roof tiles in Fahua Temple. Mongolian architects came to the island and they built the structure in Mongolian architectural style. It is assumed that it was used as a place of refuge of the 11th Emperor of the Yuan dynasty. The roof tiles made by Mongolian tile makers have patterns of dragon and phoenix and they were the symbols of royal palaces. There was a port used to ship logistics between Jeju and Yuan in the southwestern part of the island. The largest colony of camphor trees that were in great demand from Yuan palaces grow near the port. The area was also known as a place of exile for Mongolian immigrants and descendants of Yuan royal families. Therefore, the palace site in Gangjeong(江汀) and neighboring areas could be their homes and the royal tombs in Heyuan(河源)-dong could be the prince Bai bai(伯伯太子), a son of the prince Weishun(威順王) and his followers. The southwestern part of Jeju where Fahua Temple is centrally located was a place to transport and manufacture war supplies for Yuan`s territorial expansion wars. Mongolian immigrants settled down and the palace for the 11th Emperor of the Yuan dynasty was built in the area. After Yuan dynasty collapsed, descendants of the dynasty were exiled and Mongolian immigrants came to the island, archaeological Mongol culture had remained in Jeju for a long time.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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