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秦始皇)의 제일차(第一次) 순유(巡游)와 서현(西縣)에 이르러서의 고묘제조(告廟祭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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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수록지정보 : 인문논총 / 73권 / 3호
저자명 : 이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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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한 후, 일찍이 5차례에 걸쳐 천하를 순 유(巡遊)하였다. 그중 4번은 모두 서에서 동을 향하며 새로 병합한 동방 의 각국을 순시(巡視)하였다. 유일하게 제1차 순유에서만 동에서 서쪽으 로 진나라의 구토(舊土)를 순시하였다. 2천년 전부터 학술계는 동쪽으로 의 4번의 순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으나 서행(西行)의 제1차 순유에 관해서는 관심이 적었다. 이 순유의 노선과 목적은 오늘날까지도 불명확 하여 미해결 난제들을 남겨놓고 있다. 본문에서는 문헌 고증과 실지 조사를 종합하여, 진시황의 제1차 순유 의 주요목적이 고묘(告廟)와 제조(祭祖), 즉 선왕(先王)의 종묘(宗廟)에 제사 지내고 열조(列朝)와 열종(列宗)에게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함을 보고하는 것에 있었음을 논증하였다. 그 노선은 응당 진국(秦國)의 종묘 소재지를 따라 순유하는 것이었다. 우선 함양(咸陽)지역을 순행(順行)하 며 종묘에 제사를 지낸 뒤, 위하(渭河)를 따라 서쪽으로 옹현(雍縣)지역 에 이르러 그곳의 여러 선왕에게 제사를 지내고 묘(廟)에 고하였다. 뒤이 어 견하(?河)를 따라 북행(北行)하여 회중궁(回中宮)을 지나고 농산(?山)을 넘어 남하하여 농서군(?西郡)으로 진입한 뒤 서현(西縣)으로 향했다. 서현은 진나라의 첫 번째 도성으로 제1대 진공(秦公)인 양공(襄公)의 무덤과 양공묘(襄公廟), 즉 진나라의 조묘(祖廟)가 있는 곳이다. 진나라의 역사에서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곳이었다. 진시황은 서현에서 제조(祭祖)와 고묘(告廟)를 완수한 이후 계속 순행하여 농서와 북지(北地)의 산천신지(山川神祗)에 제사 지내고 마지막으로 경하(涇河)를 따라 함양으로 돌아왔다. 진시황은 제1차 순유을 마친 뒤 함양으로 돌아온 후 곧장 종묘제사를 포함한 일련의 개혁에 착수하였다. 우선 제도를 바꾸어 생전에 위남(渭南)에 자신의 묘(廟, 信宮)를 세웠다. 이듬해에도 계속 제도를 바꾸어 종묘와 침전을 분리하였는데, 신궁(信宮)은 자신의 종묘로 삼아 극묘(極廟)로 개명하였으며 침전은 여산시황릉(驢山始皇陵)에 건축하고 극묘와 여산능침(驢山陵寢)의 사이에 도로를 개설하여 연결하였다. 진시황이 이렇게 종묘제사제도 개혁을 시작한 것은 그가 고래(古來)의 익법(謚法)을 폐지하고 스스로 시황제(始皇帝)라고 칭한 것과 아울러 이세원년(二世元年)의 종묘제사 개혁 등 일련의 거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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