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軍政期 吳天錫의 교육정책 수립과 역사교육

저작시기 2015.10 |등록일 2016.04.18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34페이지 | 가격 7,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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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역사교과서연구소 수록지정보 : 역사와 교육 / 21권 / 95 ~ 128 페이지
저자명 :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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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오천석은 해방 이후 미군정 아래에서 한국의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했던 대표적인 교육행정가였다. 특히 미군정청 학무국과 문교부에 근무하면서 한국 교육정책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당시 오천석이 추진한 교육정책은 해방 이후 민족교육이 절실한 한국의 현실에 맞지 않는 미국식 교육제도의 모방으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특히 교육과정 수립 과정에서 역사 과목을 사회생활과에 통합함으로써 식민 교육 청산과 새로운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당대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오천석이 처음 미군정청의 직원으로 근무하게 된 것은 미군정 교육담당자 얼 락커드(Earl N. Lockard)의 제의에 따른 것이었다. 락커드를 비롯한 미군정의 인사들은 영어에 능숙하고 기독교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식 교육제도에 익숙한 오천석을 신뢰하고 있었다. 미군정청 내에서 오천석은 한국인 교육계 인사들로 구성된 자문기구를 설치하고, 교육제도 및 교육과정을 수립하는 일을 맡았다. 오천석이 주도하여 설치한 교육 자문기구로는 한국교육위원회와 조선교육심의회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 자문기구의 논의과정에 참여하면서 교육제도와 교육과정 수립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주목할 점은 이 과정에서 역사가 독립교과로 바로 서지 못하고 사회생활과 속에 편재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오천석은 역사를 사회생활과에 편입한 이유로, 첫째 역사과가 기존 사회의 관념과 지식을 주입하는 교과이고, 둘째 사회생활과를 통해 민주주의 공민을 양성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오천석이 주장한 사회생활과 교육과정은 당시 미국의 사회과 교육과정을 무비판적으로 한국에 적용한데 지나지 않았으며, 이는 곧 미군정청에서 교육정책을 담당하고 있던 미군들의 입장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결국 오천석이 수립한 사회생활과 교육과정은 역사학계의 적지 않은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교육정책 수립을 통해 교과만 통합했을 뿐 교육 현장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아 교실에서는 역사과를 독립된 교과로 인식하고 가르치는 실정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렇듯 교육정책과 현장의 교육이 혼돈되는 과정에서 탈식민화를 위한 제대로 된 역사 교육과정 수립과 교과서 제작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영어 초록

Cheon-Seok Oh(吳天錫) was a representative educational administrator who formulated and implemented Korean education policy under the US military government after liberation in Korea. In particular, he is known as a person who laid the foundation for Korean education policy while serving at the Bureau of Education and the Ministry of Education of the US Military Government. However, the education policy promoted by Cheon-Seok Oh at that time had a number of problems, because it imitated the American education system that was the not suitable to the Korean circumstances which desperately needed ethnic education after liberation. In particular, by integrating the subject of history with the social studies in the course of establishing curriculum, he failed to properly meet demand of the time for the clearing of colonial education and the building of a new unitary national state. Cheon-Seok Oh started to work as an official of the US military government office in accordance with the proposal of Earl N. Lockard, who was in charge of education at the US military government. US military officials including Lockard trusted Cheon-Seok Oh, who spoke fluent English, had the Christian ideas, and was familiar with the American education system. In the US Military government office, Cheon-Seok Oh was assigned a task of installing an advisory body consisting of Korean education experts, and also took on the job of establishing the educational system and curricula. The education advisory bodies the installation of which was led by Cheon-Seok Oh included the Korean Committee on Education and the National Committee on Educational Planning. As he participated in the discussions at these advisory bodies, he was deeply involved in the establishment of Korean education system and curriculum. Notable is that in this process, history failed to stand upright as an independent subject and ended up being integrated into the social studies. Cheon-Seok integrated history into the social studies, on the grounds that first, history is a subject to instill existing social notions and knowledge, and secondly, citizens of democracy can be nurtured through the social studies. But the social studies’ curriculum insisted by Cheon-Seok Oh was nothing more than the indiscriminate adoption of US social studies’ curriculum at that time uncritically applied to Korea, and it was in line with the position of the US military officials in charge of education policy at the US Military Government Office. Eventually, the social studies’ curriculum Cheon-Seok Oh established aroused considerable opposition from the historical academia. Furthermore, since he only integrated educational curriculum through education policymaking and failed to take into account the realities of the educational field, teachers in the classroom recognized Korean history as an independent subject and taught it separately. A noteworthy fact is that, in the chaos of the actual education in the classrooms not in conformity with the educational policy, the establishment of the proper historical curriculum for decolonization and production of appropriate textbooks were pushed a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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