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조합교회 ‘순회교사’ 柳一宣의 생애와 친일활동

저작시기 2015.12 |등록일 2016.02.11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48페이지 | 가격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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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록지정보 : 한국독립운동사연구 / 52권
저자명 : 박혜미

목차

1. 머리말
2. 근대의식의 형성과 교육활동
3. 친일적 교회활동과 기독교관
4. 조선총독부 囑託과 일본정신의 선전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한국어 초록

본 논문에서는 유일선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하고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행적을 주목하여 살펴보았다. 1879년 경성에서 출생한 유일선은 근대교육기관인 을미의숙과 경성학당에서 중등교육을 받은 후 1900년 동경물리학교에 입학하여 수리학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 귀국한 유일선은 수리학자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이를 토대로 다양한 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강제 병합 이듬해인 1911년부터 유일선은 교육가로서의 행보는 중단하고 조선총독부 경성부의 中部長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한편 조선총독부는 조선 기독교 세력을 회유 ․ 탄압하고 궁극적으로는 친일화 하려는 정책을 실시하였는데, 그 정책 중 하나가 일본의 기독교 교파를 조선에 직접 침투시키는 것이었다. ‘일본조합교회’는 이에 적극 협력하여 1911년 ‘조선전도본부’를 설치하고, 한말 경성학당장을 역임한 바 있는 와타세 쓰네요시 목사를 조선에 파견하였다. 와타세 목사는 경성에 한양교회를 설립하여 조선인 전도를 시작하였다. 이 때 유일선은 한양교회의 초창기 신자로서 ‘집사’ 직분을 맡았고 1913년 중부장을 사임한 이후에는 와타세 목사의 지원을 받아 일본 同志社대학에 진학해 신학을 전공하여 목회자가 되기에 이른다.
목회자 유일선의 친일 행위는 1919년 3 ․ 1운동을 계기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일본조합교회가 실시한 대시국특별운동에서 호남 지역의 주임을 맡아 3 ․ 1운동을 왜곡 ․ 축소시키는 강연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19년 11월, 여운형의 渡日 과정에서 감시자 역할을 자처하여 임시정부로부터 ‘종교라는 가면을 쓴 고등형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편 1921년 10월, 일본조합교회는 朝鮮會衆基督敎會로 명칭을 변경하고 조직을 개편하였다. 유일선은 회중기독기독교회의 회장으로서 실질적인 관리자 역할을 담당하며 주로 교회 소속 교육기관을 설립 ․ 운영하는 일에 집중하였다.
그런데 유일선의 행보는 193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1934년경부터 조선총독부 囑託으로 임명된 것이다. 촉탁 유일선은 조선인들의 정신과 일상을 통제 ․ 교화하고자 했던 일제의 식민정책을 선전 ․ 전파하는 강연을 전국적으로 실시하였다.
이상과 같은 유일선의 행적을 통해 민족정신 ․ 시대정신이 부재했던 친일 지식인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아울러 유일선이 소속되어 있었던 일본조합교회 조선전도본부와 조선회중기독교회의 식민주의적 성격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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