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8세기 나한도의 신경향

저작시기 2015.09 |등록일 2015.12.24 | 최종수정일 2018.11.14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24페이지 | 가격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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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수록지정보 : 불교학보 / 72권
저자명 : 신광희

목차

한글요약
Ⅰ. 머리말
Ⅱ. 남장사 의 개요
Ⅲ. 다양한 도상의 탐색과 수용
Ⅳ. 화사의 분업과 개성 표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s

한국어 초록

십육나한(十六羅漢)은 석가모니에게서 미륵이 올 때까지 열반에 들지 말고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라는 수기를 받은 열여섯 명의 불제자들이다. 이들의 모습을 그린 십육나한도(十六羅漢圖)는 조선후기에 특히 성행하였는데, 상주 남장사(南長寺) <십육나한도>는 초기 작품군인 18세기의 사례 중 하나이다.
남장사 <십육나한도>는 1790년 남장사 승려들의 발원으로 <지장시왕도>와 함께 제작되어 영산전에 봉안되었으며 서울 ? 경기에 주 근거지를 둔 화사 상겸(尙謙)과 경상권의 화사 영수(影修) 등이 함께 제작하였다. 이 그림은 18세기 다른 작품들이 대부분 명대(明代) 화보의 도상을 차용한 것과 달리, 17세기에서 18세기 전반까지 조선에서 활발히 제작된 십육나한 조각상의 도상과 당시 궁정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책거리 도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그려졌다. 또한 수화사의 이력을 지닌 영수와 상겸이 함께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역할을 나누었는데, 도상은 상겸이 주도한 것으로 보이며 채색은 각기 화폭을 나누어 맡았다. 상겸은 당시 중앙인 서울 ? 경기에서 화업을 시작하였고 왕실불사에 동원되기도 했으며 충남 예산과 경북 상주지역에까지 초빙되어 불화를 그릴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고 <십육나한도>를 그리기 2년 전인 1788년에는 남장사 <괘불화>를 주관하기도 했다. 그러한 인연으로 남장사 <십육나한도>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보이며 작업 과정에서 본인의 개성을 도상과 화풍 전반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영수 역시 그가 주도한 화폭에서 본인의 개성을 잘 드러냈으며 <십육나한도>와 함께 그려진 <지장시왕도>를 맡아 그렸다.
남장사 <십육나한도>는 새로운 도상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고 한 작품에서 두 가지 화풍을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후기 수화사들의 협업 과정에서 역할 분화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사례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영어 초록

The sixteen Arhats were disciples of Shakyamuni Buddha, and were instructed to preserve his teachings, and to perform good deeds for Sentient beings until the advent of the Maitreya Buddha. The Sixteen Arhat painting of Namjangsa Temple at Sangju in Gyeongsangbuk-do province was created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This painting was completed in 1790, along with the Painting of Ksitigarbha Bodhisattva, and the Ten Underworld Kings, by the monk-painter Sanggyeom (尙謙), active in Seoul and its vicinity around this time, and by Yeongsu (永修), another monk-painter based in Gyeongsang Province. It was commissioned as per the wishes of the monks of Namjangsa Temple, and was enshrined there in the Yeongsanjeon Hall.
This painting differed from its counterparts produced in Joseon in the 18th century that drew on the foundation of images prevalent during the Ming Dynasty of China. This painting was based on the iconography of the sixteen Arhats sculptures that were produced in large numbers, between the 17th and early 18th centuries. These images were noted in bookshelf-related paintings that were in vogue at the Royal Court at that time. Sanggyeom and Yeongsu had separate roles in creating this painting. Both had served as head monk-painters. It is thought that the iconography was drawn by Sanggyeom, while both artists shared responsibilities in the coloring.
Sanggyeom had previously worked on Buddhist paintings in Seoul and its vicinity, and had once been invited to take part in creating Buddhist paintings for the Royal Court. He was also invited to assist with Buddhist paintings in Yesan of the Chungnam province, and Sangju of the Gyeongbuk province, owing to his superb skill as an artist. He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production of the Guebulhwa, a large Buddhist painting for outdoor ritual at the Namjangsa Temple, two years before beginning work on the Sixteen Arhats Painting. Thus, it is assumed that his involvement in the former work, led to his invitation to work on the latter. It appears that his unique style was positively employed in the overall image of this painting. Yeongsu"s unique style also appears to have been reflected in his contribution to this work, and in the Painting of Ksitigarbha Bodhisattva and the Ten Underworld Kings.
New images of the Arhats appear to have been actively adopted for this work that displays the unique styles of these two monk-painters. Researchers regard this as a valuable painting that reveals the collaboration between the two head monk-painters.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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