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화와 전통 불교의례의 변모

저작시기 2010.08 |등록일 2015.12.24 | 최종수정일 2018.11.14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41페이지 | 가격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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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수록지정보 : 불교학보 / 55권
저자명 : 고영섭

없음

한국어 초록

이 논문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불교 의례가 어떠한 변화를 거쳤는지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전통 불교의례의 이러한 변모는 조선이 근대화되어가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때문에 조선전기 이래 국가의 공식적인 신앙체계로부터 일탈한 전통 불교의례는 큰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선후기 불교는 민중들의 생활 속으로 깊이 스며들어 감으로써 존재감을 확보해 갔다. 그 과정에서 전국의 주요 사암들에서는 불교의례들이 자주 설행되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불교의식집들을 널리 간행하였다. 이 글에서는 조선후기 전통불교의례의 개혁과 정비의 과정이 한국의 근대화와 어떻게 맞물려 왔는가에 대해 선행 연구의 검토 위에서 살펴보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경험하고 난 조선후기 불교계의 상황은 조선전기와는 몇 가지 면에서 달랐다. 즉 새로운 이념에 의해 건국의 기틀을 다지려 했던 조선 전기 신흥사대부들과 달리 조선후기의 유자들은 종래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계승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임란과 호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승병의 활약을 통해 그 존재감을 확보해온 불교계에 대해 조선정부는 이전 시기처럼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비공식적이기는 해도 조선정부는 국가적인 수습의 차원에서 종교적 기능을 지닌 불교계의 복원을 측면에서나마 지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불교의례는 유교일변도의 정책으로 역사의 전면에서 거행될 수 없었다. 때문에 불교의례는 종래의 공식적 신앙체계로부터 일탈함으로써 미신적·기복적 성격을 띄게 되었다. 특히 국가가 직면한 천변재이(天變災異)를 물리치는 역할을 불교계가 담당하면서 더욱더 심화되었다. 이렇게 되자 조선 후기에 이르러 불교계 내부에서는 불교의식 개혁의 목소리가 일어났다. 그 결과 조선 사회가 근대화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전통 불교의례도 적극적인 변모를 거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불교인들도 조선의 근대화 과정에 부분적이나마 동참하게 되었다. 그리고 종래의 개별적인 의식집에서 수지(受持)와 집례(執禮)의 편리함을 고려하여 간편한 통합의식집이 탄생하였다. 이는 종래의 주제 중심의 의식집이 가진 한계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조선후기의 대표적 불교인인 백파(白坡)는 당시 불교의식집에 의거한 불교의례들이 지닌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함으로써 불교의례 정비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의 물꼬를 열었다. 그 이후 좀 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작법의 마련과 대중들과의 소통이 큰 과제가 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교단이 부재했던 조선후기 불교의식의 정비는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19세기의 혼란기를 껴안은 채 다시 20세기의 과제가 되었다. 즉 백파의 문제의식은 다시 안진호의 문제의식, 그리고 불교의 근대화 과제뿐만 아니라 불교의 현대화 과제로까지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그것은 21세기 한국불교인들의 문제의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조선의 근대화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치관 등 사회 구조 전반에 걸쳐 진행된 것처럼 전통 불교의례의 근대화는 일상 범례의 간소화와 일상 언어의 대중화로 두드러졌다. 특히 불교계 근대화의 주요한 흐름 중 하나는 범패(梵唄)의 부흥을 주장하고 『작법귀감』과 『불자필람』을 비롯하여 『석문의범』(釋門儀範) 등의 불교의식집 간행으로 이어감으로써 ``전통 불교의례의 정비와 간소화``를 시도했다. 다른 하나는 불교의식문을 한글화하고, 불교의례의 절차 및 방법을 단순화했으며, 불교식 결혼을 장려함으로써 ``불교의례의 생활화·현실화``를 도모한 것이었다.

영어 초록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search what change traditional Buddhism experienced in the process of Korean modernization. The change of traditional Buddhism ceremony was inevitable in the modernization process of Joseon. Therefore, the traditional Buddhism ceremony, which had escaped from official religious system since the early Joseon Dynasty, should experience the change. The Buddhism of the late Joseon Dynasty secured its existence by being permeated through the life of people. It is estimated that Buddhism ceremonies were performed frequently in national temples and the collections of Buddhism ceremonies were widely published to support them. The study researched how reform and reinforcement process of Buddhism ceremony was interlocked with Korean modernizati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on the basis of pilot study review. After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the Manchu War in 1636, the Buddhism situation of the late Joseon Dynasty showed several differences from that of the early Joseon Dynasty. In other words, unlike new literati of the early Joseon Dynasty, who tried to prepare the ground of national foundation with new ideology, the Confucian of the late Joseon Dynasty tried to maintain and success existing vested right. Unlike the past, The Joseon government could not disregard the Buddhism society that secured its existence through the activities of monk soldiers in the whirl of Japanese Invasion and Manchu War. Although it was not official, the Joseon government could not but to support the recovery of Buddhism society, which had the religious function, from the viewpoint of national recovery. But the Buddhism ceremony of the Joseon Dynasty could not be performed officially because of the policy biased to Confucianism. Therefore, the Buddhism ceremony escaped from the official religious system and showed the characteristic of superstition/shamanic fortune belief. Especially, it was deepened more as Buddhism played the role of repelling extraordinary natural occurrence of country. As a result, there was the voice of Buddhism reform inside Buddhism society in the late Joseon Dynasty. Baekpa, the representative Buddhist of the late Joseon Dynasty, opened the discussion about the need to maintain Buddhism ceremony by pointing out the problems of the current Buddhism ceremonies correctly. After that, the preparation of more practical, concrete jakbeop(Buddhism dance) and the communication with people could be important issues because of his role. However, the Buddhism ceremony could not be maintain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when religious association did not exist. Embracing the confusion of the 19th century, the problems became the assignments of the 20th century. It was the problem interlocked with the modernization of Buddhism and it was led to the assignment to suggest the wise means of escape. The directions of reform were two aspects mainly. One direction was to try ``preparation and simplification of traditional Buddhism ceremony by asserting restoration of beompae(Buddhism song) and publishing the collections of Buddhism ceremony such as 『Jakbeopguigam』, 『Buljapillam』and 『Seokmunuibeom』 Another direction was to try practice and modernization of Buddhism ceremony by publishing Korean version of Buddhism liturgics, simplifying procedure and method of Buddhism ceremony and encouraging the marriage of Buddhism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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