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 在朝日本人의 전쟁협력 실태와 그 성격

저작시기 2010.08 |등록일 2015.12.24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38페이지 | 가격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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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록지정보 : 한국독립운동사연구 / 36권
저자명 : 박맹수

목차

1. 머리말
2. 在朝日本人 增加推移와 그 背景
3. 在朝日本人의 戰爭協力 實態와 그 性格
4. 스파이 활동 사례 분석 -『國民新聞』 조선특파원 菊池謙讓의 경우-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한국어 초록

19세기 세계 역사상 유례를 볼 수 없을 만큼 대규모적이며 장기적인 민중항쟁이었던 동학농민혁명은 제국주의 일본의 정치 군사적 개입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하게 된 배경에는 일본의 정치 군사적 개입, 달리 표현하자면 일본의 정치가, 관료, 군인들의 침략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제국주의 일본이 동학농민혁명을 진압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일본정부와 일본군의 조선 침략 및 농민군 진압을 밑으로부터 지지하고 협력했던 무명의 일본인, 즉 ‘아래로부터의 침략자’들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의 하나이다.
이 논문에서는 동학농민혁명기를 전후하여 다양한 ‘전쟁협력’ 활동으로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침략 및 농민군 진압을 뒷받침했던 在朝日本人의 인구의 급격한 증가 추이를 살펴본 다음, 그 같은 인구증가를 초래한 역사적 배경에 대해 고찰하였다. 그리고 재조일본인들이 어떤 방법으로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 전쟁 및 농민군 진압에 협력했는지 그 구체적 실태를 밝혀 보았다.
동학농민혁명기 재조일본인은 자기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일본군의 출병을 청원하였을 뿐 아니라, 출병한 일본군을 위한 식사와 숙소 제공 등 갖가지 편의를 제공하였다. 또한 다수의 재조일본인들이 朝鮮語 通譯으로 從軍하였으며, 御用商人의 신분으로 군수물자 조달에 협력한 재조일본인도 적지 아니하였다. 뿐만 아니라, 大陸浪人 출신 재조일본인들은 일본군에 의한 불법적인 조선왕궁 점령사건에 적극 가담하여 反日的인관료를 축출하고 親日的인 관료를 중심으로 大院君政權을 수립한 ‘경복궁쿠데타’ 과정에서 최일선에 서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기 재조일본인들의 다양한 전쟁협력 활동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바로 다양한 계층의 재조일본인들이 농민군에 대한 스파이 활동에 적극 가담하였다는 사실이다. 領事館 警察, 公使館 소속 駐在武官, 內地行商, 留學生, 신문사 특파원 등이 중심이 된 스파이 활동 사례 중에서도 특히 『國民新聞』 특파원 菊池謙讓이 벌인 스파이 활동은 종래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사례이다. 菊池는 41일간에 걸친정탐 활동을 국민신문에 연재하였다. 그 기사 속에는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새로운 사실과 함께, 특파원들마저 스파이 활동을 통해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전쟁에 협력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이 논문에서 새로 밝혀낸 국지겸양의 스파이 활동 사례는 향후 동학농민혁명기 조선에 특파된 신문사 특파원들의 구체적 행적, 농민혁명을 보도한 일본신문들의 보도 태도 등을 실증적으로 규명하는 데 작은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영어 초록

Donghak Peasant Revolution was a large-scale and long-term mass struggle which was unparalleled in world history in the 19th century, however, it ended in failure because of the political and military intervention of Japanese imperialism. But in the background of the failure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there was Japanese political and military intervention, in other words, the policy of aggression of Japanese politicians, bureaucrats and military personnels was an important factor in the failure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however, ordinary Japanese who cooperated with Japanese government and army, and supported Japanese invasion of Korea and suppression of Donghak peasant, that is, the Japanese invaders from the bottom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Japanese suppression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In the article, I examined the rapid population growth trend of Japanese in Korea who supported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and suppression of Donghak Peasant army with their various war support before and after times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and then studied historical background which led to such Japanese population growth in Korea. And I examined the real condition concretely in which way Japanese in Korea cooperated in the Japanese aggressive war and suppression of Donghak peasant army.
Japanese in Korea not only petitioned the dispatch of Japanese troops to Korea during times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but also offered every convenience including providing them with accommodation, meals, and others to the Japanese soldiers dispatched to Korea. Many Japanese served in the war as interpreters and not a few Japanese cooperated with Japanese government in military procurements as suppliers of government service. Also Japanese in Korea, who were former ronins, actively participated in illegal occupation of the Korean royal palace by Japanese troops and took the lead in the course of “Gyeongbok Palace coup” which ousted anti-Japanese bureaucrats and established the government of Daewongoon with pro-Japanese bureaucrats.
But the most striking case among the activities of Japanese in Korea was their active participation in conducting espionage on Donghak peasant army. There were many espionage cases by the police officers of the Japanese consulate in Korea, a military attache to the Japanese legation, peddlers, Japanese students studying in Korea and correspondents. Among them, espionage of Kikuchi, the correspondent of “Kokumin Shinbun” is a new case. The article about his espionage for 41 days was printed in “Kokumin Shinbun”. The new facts about Donghak Peasant Revolution were described in the article, and the shocking point is that even the correspondents supported the Japanese aggressive war through espionage.
The case of Kikuchi’s espionage which was newly discovered in this article is expected to be little clue to objectively find out the truth of Japanese correspondent’s definite whereabouts and information set of Japanese newspapers on Donghak Peasant Revolution.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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