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노식의 행적과 『朝鮮唱劇史』의 저술 경위 검토

저작시기 2009.10 |등록일 2015.12.24 | 최종수정일 2018.11.14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32페이지 | 가격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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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판소리학회 수록지정보 : 판소리연구 / 28권
저자명 : 이진오

목차

1. 들어가며
2. 정노식의 생애와 행적
3. 『조선창극사』의 저술 배경과 경위
4. 나가며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한국어 초록

본고에서는 정노식(1891~1965)의 생애와 행적을 점검하고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조선창극사』의 저술 경위를 검토하였다. 정노식은 우리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장면에서 활약하였음에도 좌익 활동과 월북이라는 이력 때문에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상세한 고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노식은 1891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1912년 일본에 유학하여 明治大學 法科를 다녔으며, 1919년 귀국 후에는 주로 서울에서 3ㆍ1운동과 청년회 조직 활동에 관여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서 좌절을 경험한 정노식은 1920년대 중반 전북 김제로 귀향한다. 이때 그의 사회주의적 연구와 판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정노식은 1930년대 후반 서울에서의 활동을 재개 하였는데, 이때 『조선창극사』의 저술에 매진하게 된다. 1940년대 정노식은 본격적인 사회주의자의 면모를 드러내면서 주로 정치적인 행보를 걷게 된다. 정노식은 남로당의 결성과 활동에 참여하다가 1948년 12월 월북한다. 월북 후 그는 북한의 여러 직책을 역임하다가 1965년 7월 12일 사망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 저술 경위에 대해서는 이 책의 序文에서의 언급과 전도성의 면담시점, 정노식 本 〈퇴별가〉의 행방 추적 통하여 살폈다. 1940년 1월 조선일보사에서 출간된 『조선창극사』의 초고는 이미 1939년 7월경에 씌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938년 5월 『조광』에 발표했던 글에 전도성에게 자문을 구하고, 자신이 갖고 있었던 〈퇴별가〉 등의 문헌 자료의 보충을 통하여 1년여 만에 전격적으로 『조선창극사』를 출판하게 되었다.
본고에서 밝힌 내용 이외에도 정노식의 삶과 『조선창극사』의 저술 및 간행 경위에 대한 공백이 남아있다. 이후 그에 대한 자료 보완과 면밀한 고증을 통한 후행 연구가 요청된다.

영어 초록

This paper studied Jeong, no-sik(鄭魯湜)’s life and his achievement and also investigated the details of his major work Joseon-changgeuksa(朝鮮唱劇史). Jeong, no-sik plays an active part in modern and present age. Nevertheless, because of his left-wing politics and crossing over the border into North Korea, detailed approach was not accomplished about his life and his achievement. Jeong, no-sik was born in Gimje, Jun-buk area. In 1912 he studied abroad in Japan and specialized in law at Meiji-university(明治大學). In 1919, After he returned from abroad, he took part in the 3ㆍ1 movement and the young men’s association mainly in Seoul. But Jeong, no-sik felt frustrated in these chapter of accidents. In the mid-1920s he return home to Gimje, Jun-buk area. I think, at this time he was growing more and more interest in socialism and study of pansori. In late-1930s Jeong, no-sik return to work in Seoul and strive to write of Joseon-changgeuksa. In 1940s Jeong, no-sik address himself to socialism. After this he strive for political activities and take part in organization of namrodang. In December of 1948 he cross over the border into North Korea. After then I ascertained that he consecutively filled various government positions and died on 12 of July in 1965.
About the details of his writing Joseon-changgeuksa I studied through the mention on the preface of his work, when was jeoun, do-sung interview and searching traces of Jeong, no-sik’ 〈toebyeol-ga〉. The manuscript of Joseon-changgeuksa, which was published in January of 1940 at joseonilbosa, was known as writing in July of 1939. Reviewing through above records, he sought advice from jeoun, do-sung with himself proposed article at joguang in May of 1938 and through making up for documentary records, he published Joseon-changgeuksa in more than a year at last.
Aside from studying out in this article, more things has been unsettled about Jeong, no-sik’ life and his writing and publishing of Joseon-changgeuksa. After then we need to study costantly through making up for documentary records and historical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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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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