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풍왕 시기의 정치적 상황과 부흥운동의 전개

저작시기 2013.03 |등록일 2015.12.24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30페이지 | 가격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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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학중앙연구원 수록지정보 : 정신문화연구 / 36권 / 1호
저자명 : 김병남

목차

Ⅰ. 머리말
Ⅱ. 부흥백제국 성립의 대외적 조건
Ⅲ. 도침과 복신의 위상과 부흥운동의 향방
Ⅳ. 신라의 대응과 도침의 몰락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s

한국어 초록

서기 661년 6월에 신라에서는 무열왕의 죽음과 문무왕의 즉위라는 정치 변동이 있었고, 전쟁의 한 축인 당나라 또한 고구려 정벌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당의 고구려 정벌은 곧 백제 땅에 대한 당의 추가적인 군사 투입을 어렵게 하는 호기로 작용하였고, 따라서 이러한 이해관계는 백제 부흥 세력과 당 주둔군 지도부 사이에 외교적 교섭을 진행하게 만들었다.
이때 백제 측의 외교 주체는 영군장군으로서 자신의 세력권인 사비와 그 주변의 임존성을 근거로 한 도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백제와 당의 교섭은 중요한 이해 당사자인 신라에게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신라는 평양성의 당군을 구원하기 위해 조직된 군대를 돌려 부흥 세력을 공격하기 이른다. 서기 661년 9월 27일에 백제 옹산성을 함락시키고 장수들과 수천 명의 병사를 참살하였고, 다시 인근의 우술성 마저 함락시켜 부흥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이를 통해 신라는 백제와 당의 유착을 방지하고 다시 나·당 동맹의 관계를 재확인하였다.
결국 이 옹산성 전투는 풍왕 정권의 수립과 함께 새롭게 시작되는 백제의 국가 재건 일정을 송두리째 흩어놓았다. 백제와 당의 교섭 진행과 그에 따른 신라의 반발은 유기적 지역 네트워크가 공고해지기 전에 한 부분을 와해시키고 말았으며, 나아가 지역 부흥 세력의 일부가 다시 신라에 투항하는 인적 네트워크의 결속마저도 훼손하는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백제의 정국 운영 주도권이 복신에게 넘어간 것이다.

영어 초록

In June 661, they were turned to their advantage by both Silla’s political changes: the death of the King Muyeol and the enthronement of the King Moonmu, and the Dang’s policy switch into the conquest of Goguryeo. They seized a golden opportunity that Dang was difficult to deploy additional military forces in Baekje’s territory because of the conquest of Goguryeo in Dang. So this interests made diplomatic negotiations between them and leaders of Dang’s occupation forces progressed.
At this time, foreign policy chief on the part of Baekje was Dochim as Younggun(領軍) General who was based on Sabi and Imjon Fortress. But this negotiations between Baekje and Dang caused consciousness of crisis to Silla, major interested party. So Silla withdrew an army to rescue Dang’s forces in Pyungyang Fortress and attacked on the reconstruction forces. On Sep. 27, 661, Silla captured the Ongsan Fortress of Baekje, and slaughtered many generals and thousands of soldiers. Again Silla captured the Woosul Fortress, thus shot up the reconstruction forces. Through this, Silla broke the chain of collusive ties between Baekje and Dang, and reconfirmed relationships of the Silla?Dang alliance.
In the end, the defeat in battle of Ongsan Fortress was a shattering blow to reconstruction efforts of Baekje which began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 Pung’s regime. Negotiation between Baekje and Dang, and Silla’s opposition to this broke up a part of the network before the network was established. Furthermore, some local reconstruction forces surrendered to Silla and so this produced bad results which the solidarity of human network was damaged. And at this moment, the leadership in managing political situation of Baekje was to go over to Boksin.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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