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무라 겐타로(中村健太郞)의 「아베(阿部)무불옹(無佛翁)을 추모함」

저작시기 2010.03 |등록일 2015.12.21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24페이지 | 가격 6,000원
다운로드
장바구니관심자료
상세신규 배너

* 본 문서는 배포용으로 복사 및 편집이 불가합니다.

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학중앙연구원 수록지정보 : 정신문화연구 / 33권 / 1호
저자명 : 심원섭, 나카무라겐타로

목차

Ⅰ. 「아베 무불옹을 추모함」의 연구사적 가치
Ⅱ. 아베의 ‘내선융화’ 언론활동과 김옥균, ‘귀족 사회’에 대한 유화 정책
Ⅲ. 아베의 계몽적 종교 정책과 조선 종교계와의 유화적 관계
Ⅳ. 나카무라의 추도문과 이광수의 추도문
자료: 「아베 무불옹을 추모함」?역문 전문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s

한국어 초록

아베 미츠이에(阿部充家, 1862-1936: 4대 경성일보 및 3대 매일신보 사장)는, 조선의 지식인들을 체제 내로 회유하는 작업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사이토 마코토 총독(齎藤實)의 정책 참모로 장기간 활약한 인물이다. 이 글은 나카무라 겐타로(中村健太郞)가, 아베의 사망 직후 쓴 추도문인 「아베 무불옹을 추모함(阿部無佛翁を?ぶ)」(1936.1, 경성일보)을 분석하여, 아베의 조선 내 활동 내용들을 새롭게 제시해보려는 목적 아래 씌어졌다.
나카무라 겐타로는 아베가 ‘뒤에서 조용히 큰일을 추진하는 인간형’이라는 점, ‘내선일체’를 실현하려는 신념 아래 ‘조선문화를 이해하고 조선인과 융화를 이루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하 나카무라가 제시한 아베의 새로운 면모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베는 경성일보 운영 중, ‘남북 만주시찰단’의 ‘단장’으로서 재만 조선인의 ‘위문’에 직접 나섰으며, 가고시마의 묘대천(苗大川) 조선인부락 시찰의 단초를 열고, 전국 신문기자 대회의 회장이 되어 조선언론계의 통일을 꾀했다.
두 번째, 아베는, 한일합방의 조선측 주역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방태영을 통역 겸 비서로 쓰는 등, 조선의 구지배계급의 신임을 사는 데 진력했다. 1989년에는, 일본 망명 중이던 김옥균, 박영효 등과도 교분을 나눈 바 있다.
세 번째, 조선의 ‘정신문화의 부활’을 위해 노력했던 아베는 조선 종교에 포용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으며, 그 리더들과 유화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조선의 유림에 대해서는, ‘시대착오적인 소중화주의’를 깨우쳐 주려고 노력했다.
네 번째, 조선왕조의 탄압 속에서도 높은 수준의 문화적 저력을 유지해온 조선 불교에 그는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조선의 명찰을 지속적으로 방문하여 지도자들의 신뢰를 얻는 한편, 조선 불교의 진흥을 위해, 사찰 제도의 정비, 불경 제공, 일본 불교와의 교류 도모 등 지원을 했다.
네 번째, 천도교 및 기독교 리더들, 손병희, 윤치호 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이 ‘위험세력’화되는 경향을 막는 ‘안전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3.1운동 발발 후에는, 사법당국의 견제 속에서도, 운동 주역들의 구제를 위한 막후 활동을 벌이며, 그들의 ‘덕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종합적으로 볼 때, 나카무라는, 아베를, 통치 당국과 조선사회를 매개하는 ‘사회적 안전판’으로서의 역할에 주력했던 실무형의 인물, ‘내선 융화’라는 종국적인 정치적 목표의 실현을 위해, 유화적인 ‘덕화(德化)’ 정책을 사용하며 식민지 체제를 안정적인 것으로 이끌어 가려 노력한 정치문화적 리더로 보았던 인상이 짙다. 추가적인 자료의 발굴 및 보완연구를 통해 아베의 조선 재임 시대의 사상과 활동상에 대한 연구가 보다 정밀한 차원으로 발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영어 초록

Abe Mitzihe(阿部充家; 1862-1936) served as the 4th president of the Keizyou Press and the 3rd for the Maeil Shinbo newspaper. He had a relationship with a large group of Joseon intellectuals, and played an instrum ental and decisive role in winning them over to the authorities’ agenda. He also served as the policy officer of Governor-general Saito Makoto(齎藤實) for a long time. In this article, a memorial writing entitled “Cherishing the memory of Abe(阿部) Mubul-ong(無佛翁)[阿部無佛翁を?ぶ]”, written by Nakamura Gentaro(中村健太郞) right after the death of Abe(1936.1, Gyeon gseong Ilbo) is analyzed, to review Abe’s activities in Joseon from a new perspective.
Nakamura Gentaro presented Abe as a type of person who would quietly prepare for big tasks, and put a lot of effort into the task of peacefully coexisting with the Joseon people, with an understanding of the Joseon culture, under the conviction of establishing a world where Japan and Joseon would become one. Nakamura also emphasized the fact that Abe brought order to the press community of Joseon, had an amicable relationshi p with the religious communities as well, and tried to bring developments to them too. The ‘new’ aspects of Abe’s personality suggested by Nakamura are as follow:
First, when Abe was running the Gyeongseong Ilbo newspaper, he also led the task of ‘appeasing’ the Joseon people living in Manchu as the leader of the ‘Survey Expedition of Northern and Southern Manchuria.’ He initiated the survey of a Joseon village in Kagoshima’s Myodaecheon (苗大川) area as well. And he became the President of the National News Reporter Assembly, and tried to unify the press community of Joseon.
Second, Abe maintained close relationships with the Joseon people who were responsible for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He used Bang Tae Yeong(方台榮) as his translater and secretary, and tried hard to earn the trust of the members of the old ruling class of Joseon. Especially in 1989 he even made contact and formed a relationship with both Kim Ok Gyun(金玉均) and Park Yeong Hyo(朴泳孝), who were in exile at the time in Japan.
Third, Abe tried to resurrect the spiritual culture of Joseon, as he had an opened view toward Joseon’s religions. He maintained an amicable relationship with the leaders of those religious orders, and he also tried to enlighten the Yurim(conservative Confucian) figures of Joseon about the ‘misguided tendency of considering Joseon the successor of the Sino-cent ric East Asian culture.’
Fourth, he was deeply interested in Joseon Buddhism which maintained a cultural influence and power even under severe oppression of the Joseon government. He frequently paid visits to renowned Buddhist temples of Joseon, tried to earn their trust and also to bring development to the Buddhist community, in terms of institutional renovation, provision of Buddh ist scriptures and opportunities of forming relationships with the Japanese Buddhist society.
Fifth, he also maintained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Christian leaders(尹致昊) and leaders of the Cheondo-gyo(孫秉熙) religious order, who forme d a major block in the National Liberation Front’s leadership, and tried to prevent them from becoming ‘dangerous factions.’ After the March 1st movement, even with the judicial authorities keeping a close eye upon them, he tried to save some of those leaders through backstage negotiations, and tried to lead them to ‘benevolence.’
In general, Nakamura seems to have considered Abe as a mediator connecting the Japanese authorities and the Joseon society, a person who wanted to serve as a safety barrier for a troubled society, and a political and cultural leader who used a supposedly benevolent(“德化”) policy in order to achieve the merging of Japan and Joseon, and bring stability to the colonized region. Hopefully in the future more materials would be explored and revealed to assist further studies of Abe’s thinking and activities during his stay in Korea.

참고 자료

없음
  • 구매평가(0)
  • 구매문의(0)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4. 지식포인트 보유 시 지식포인트가 차감되며
         미보유 시 아이디당 1일 3회만 제공됩니다.
      상세하단 배너
      우수 콘텐츠 서비스 품질인증 획득
      최근 본 자료더보기
      상세우측 배너
      상세우측 배너
      나카무라 겐타로(中村健太郞)의 「아베(阿部)무불옹(無佛翁)을 추모함」
      페이지
      만족도 조사

      페이지 사용에 불편하신 점이 있으십니까?

      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