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당 정인보의 조선학 인식과 지향

최초 등록일
2015.11.14
최종 저작일
20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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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수록지정보 : 한국사상사학 / 50권
저자명 : 윤덕영 ( Duk Young Yoon )

한국어 초록

이 글의 목적은 정인보가 조선학에 대해서 어떠한 입장에서 이해하고 연구하고 있었는지를 조선학 연구 경향에 대한 정인보의 입장과 태도, 1930년대 전반 제기된 ‘사상혁신’론과 조선학 연구의 관련성, ‘근세 조선학’으로 규정한 실학에 대한 정인보의 인식과 발전과정을 살펴 봄으로서 해명하려는 것이다. 1930년대 조선 또는 조선학을 연구하는 경향은 크게 세 경향이 있었는데, 정인보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과 현실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지면서 운동으로서 조선을 연구하는, 곧 ‘조선학운동’으로서 조선학을 연구하였다. 정인보는 고전의 정리와 고증, 전통의 재해석과 재구성을 통해 근대 서구 문명에 대응할 새로운 동양적 근대사상을 수립하려 하였다. 신간회 해소 후 1932년 동아일보는 민족운동내의 사상적 대립과 불일치를 극복하기 위한 ‘사상혁신’을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 조선의 민족주의사상 마련과 자주적 정신을 기반으로 한 조선 연구를 강조하였다. 이런 주장에 정인보가 대응한 것이 양명학연론 과 『오천년간 조선의 얼』 논설이었다. 정인보가 주도한 1930년대 조선학운동의 최대 성과는 조선후기 특정의 학문경향이었던 실학의 재발견이었다. 정인보는 실학을 ‘依實求獨之學’으로 규정하면서, 보편적 철학 원리인 ‘實’에서 출발한 ‘실심’에 기반하여 잃어버린 민족의 독자성과 주체성을 회복하고, 백성의 일용과 민족과 나라의 실익을 가져다주는 민족 단위의 학문으로 규정하였다. 그에 있어서 ‘근세 조선학’인 실학은 무엇보다 주체적 민족론으로서 의미를 크게 갖고있었다

영어 초록

The aim of this paper is Intended to clarify to any position to study and understand what was the Joseonhak by Jeong In-bo(鄭寅 普), Position and attitude of Jeong In-bo on research trends to Joseonhak, to relevance it raised throughout the 1930s ``revolution in thought`` and Studies of Joseonhak, to the recognition and development of Jeong In-bo looking for Shilhak as the regulations to ``Modern sino Joseonhak`` Tend to study of Joseonhak greatly Three trends in the 1930s, Jeong In-bo was studied Joseon as a Joseonhak movement While having a deep interest in reality and the real problems of the colonial Joseon. Jeong In-bo was clean and classic historical research, through the reinterpretation of traditional and reconstruction. After the dissolution Shinganhoe, Dong-A ilbo was claiming the ‘revolution in thought to overcome the ideological confrontation and disagreement within the national movement and emphasized to establish a nationalist ideology and the independent spirit of the Korean Studies research based. Jeong In-bo was responded with ‘Yangmyeonghak Yeonron’ and ‘Earl of five thousand years of Joseon’ Up to the 1930s, Maximum performance of Joseonhak movement was led by Jeong In-bo, was a rediscovery of Shilhak as a certain academic tendency of the latter half of Joseon dynasty. Jeong In-bo was defines Shilhak as a ‘Euishilgudok(‘依實求獨)’ studies, and restore the independence and identity of nations lost based on the ``Silsim(實心)`` and was defined as the study of the ethnic units to bring people of the nation and the country of actual profit.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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