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의 정치, 경제정책
- 최초 등록일
- 2015.10.16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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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미군정의 출범
Ⅲ. 미군정의 정치 조직체계
1. 미군조직
2. 행정부 조직
3. 입법부 조직
4. 사법부 조직
Ⅳ. 미군정의 경제정책
1. 원조물자
2. 귀속재산
Ⅴ. 결론
Ⅵ.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일본제국주의에 의하여 사회·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수탈과 망국의 폐해를 겪은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게 된다. 그러나 이 광복이 곧 식민지시대의 변질된 사회상의 원상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국민에게 광복은 타율적인 성격의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외의 독립운동이 전승 연합국 측에 의해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나라는 연합국의 제2차세계대전 승전의 전리품처럼 광복을 맞게 되었다. 광복 당시 좌우익을 막론하고 미국을 진보적 민주주의국가로, 그리고 장차 진주할 미군을 해방군으로 규정하고 환영한다는 것이 기본적 인식이었다.
소련에 대해서도 좌익성향의 지식층과 젊은 세대는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에 진주하여 마련한 일련의 정책은 해방군이라기보다는 점령군 성격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미소 양국이 한국을 일본이나 독일과 같은 제2차세계대전의 패전국들과 동일시하였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나라와 미소 양국의 기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한반도 진주 당시의 미국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루스벨트(Roosevelt,F.) 대통령에 의하여 주도된 전후처리의 구상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루스벨트는 전후 탄생하게 될 한국을 포함한 신생독립국가들에 대하여 신탁통치를 적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는 신생독립국가들이 자치능력을 결여하고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여기에 소련이 태평양전쟁에 참전하게 되면서 상황이 변하였고, 미국은 소련의 영향력 증대를 견제할 수 있는 뚜렷한 선이 필요하게 되었다. 소련의 경우도 그들이 지향하는 세계공산화전략상 제2차세계대전 후의 신생독립국가들에 대한 영향력 확대가 가장 급박한 관심사였다. 이에 대한 미소의 전후 대외전략의 일종의 타협선으로서 한반도에 38°선이 설정되었고, 그 후 남과 북에 각각 미군정과 소군정이 등장하였다.
참고 자료
「고쳐 쓴 한국현대사」, 강만길, 창비, 2006
「미군정기의 경제구조」, 김기원, 푸른산 1990
「현대 남북한정치론」, 양병기, 법문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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