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유신과 유신체제
- 최초 등록일
- 2015.10.16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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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유신체제의 배경과 성립
2. 유신체제의 과정
3. 유신체제의 특징
4. 유신체제의 성립 요인
5. 유신체제에서의 독재와 저항
6. 유신체제의 종말
7. 평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유신의 배경과 성립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1963년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는 1967년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제3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직을 1차에 한하여 중임이 가능하게 하였으나, 박정희는 1969년 3선개헌을 통하여 1967년에 이어 1971년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여러분께 다시는 나를 찍어달라고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하였는데, 이에 상대 후보였던 김대중은 '박정희가 헌법을 고쳐 선거가 필요없는 총통이 되려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대중을 가까스로 누르고 대통령에 3선된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하고 국회를 해산한 후 정당 및 정치활동의 중지 등 헌법의 일부 기능을 정지시키고,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에 따라 계엄사령부가 설치되었고, 계엄사령부는 포고를 통하여 정치활동 목적의 옥내외 집회 및 시위를 일절 금지하고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은 사전 검열을 받도록 하며, 대학들을 휴교시켰다. 이후 한태연, 갈봉근 등의 학자들과 김기춘과 같은 젊은 검사들이 만든 헌법개정안이 10월 27일에 대통령 특별선언에 따라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게 한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공고되었고, 11월 21일에 국민투표에 부쳐져 투표율 91.9%, 찬성 91.5%로 확정되어 12월 27일에 공포되었다.
유신 헌법안이 국민투표로 통과한 1주 후인 11월 28일, 박정희 정권은 대학에 대한 휴교조치를 해제하였으며, 12월 14일 0시를 기하여 계엄령을 해제하였다. 비상계엄을 해제한 다음날인 12월 15일에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2,359명의 대의원이 선출었고, 12월 23일 박정희가 단독입후보한 가운데 대통령선거를 실시하여 찬성 2,357표, 무효 2표로 임기 6년의 제8대 대통령에 박정희가 선출되었다. 유신체제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자 1975년 1월 22일, 박정희는 특별담화를 통해 유신 헌법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참고 자료
「한국정치론」/ 정주선/ 피리마북스
「박정희와 유신체제」/ 김행선 / 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