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군사정변과 민주공화당 창당
- 최초 등록일
- 2015.10.16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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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5.16군사정변
1) 원인
2) 전개
3) 성격과 평가
2. 민주공화당 창당
1) 군정과 통치기반의 정비
2) 중앙정보부와 민주공화당 사전조직
3) 제3공화국의 탄생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1961년 5월 16일 군부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는 2년 6개월 동안의 군정 기간을 거친 다음, 1963년 12월 17일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제 3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세력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설치하고 군정을 실시하였다. 군정기간 동안 군부세력은 정치정화법을 제정하여 기성정치인의 정치활동을 금지했으며 중앙정보부와 경제기획원을 신설하여 정치와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통제를 강화했다. 1962년 12월 군정세력은 개정헌법을 통해 대통령중심제, 단원제, 중앙집권적 행정체제를 갖추었다. 군부세력은 1963년 10월 15일의 대통령 선거와 10월 26일의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합법적인 집권의 길을 열었다.
Ⅱ. 본론
1. 5.16군사정변
1) 원인
․ 정치사회적 배경
첫째. 정치세력간의 파벌싸움의 격화문제이다. 자유당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민주당은 신파와 구파 간에 형성된 ‘반 이승만 연합’이었다. 양 파벌은 7.29총선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이 총선은 구파와 신파간의 각축장이었다. 이후에도 대통령선출과 총리임명을 놓고 권력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구파의 윤보선이 대통령으로, 신파의 장면이 총리로 지명되었으나 당은 사실상 두 개로 분열된 상태였다. 민주당의 파벌싸움은 신파와 구파간의 대립으로 그치지 않고 내각구성에서 자파일색으로 장관을 임명하였기 때문에 구파는 물론 당시 의회 내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소장파의원들의 반발을 초래하게 되었다. 장면정부는 3차에 걸친 내각의 재구성을 통하여 이들을 무마하려고 하였으나 양보의 폭이 너무 좁았기 때문에 소장파는 구파 못지않게 장면정부에 대해 적대적인 세력이 되었다. 민주당의 이러한 분열상은 결국 당의 분당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장면정부는 확고한 원내기반을 장악하는데 실패하게 되었으며 정책수행에 있어서 치명적인 제약을 안게 되었다. 당의 결속을 바라던 많은 국민들은 민주당의 이러한 분열상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 자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역사 대한민국 50년사 1 / 임영태/
1963년도 5대 대통령 선거 연구 / 이병준
제3공화국 국가권력의 정당성에 관한 연구 / 박서형
5·16쿠데타는 왜 발생했으며 어떻게 성공하였나? / 홍석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