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리듬론의 탄생: 부재로서의 리듬, 율(律)의 이념 - 박슬기의 『한국 근대시의 형성과 율의 이념』에 대하여

저작시기 2015.01 |등록일 2015.06.15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5페이지 | 가격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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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문학언어학회(구 경북어문학회) 수록지정보 : 어문론총 / 63권
저자명 : 박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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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근래 현대시의 원론적 주제로서 가장 많이 다루어진 것 중의 하나가 ‘리듬’일것이다. 사실상 리듬에 대한 논의가 어느 정도 완료되었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리듬론이 일종의 붐을 이루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전공자들 사이에 현대시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재검토해보려는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작동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리듬은 시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지만, 현대시에 있어서는 그 존재가 매우 모호하여 논란이 되어 왔다. 현대시에서 가락은 구체적인 실체를 지니지 않은 존재로 취급된다. H. 리드가 이를 “시의 운율의 미묘한 불규칙성을 깨닫게 하는 배후의 유령”1)이라 부른 것이 이런 인식의 좋은 예가 된다. 매체의 관점에서 통시적으로 시를 분류할 때, 음성, 활자, 하이퍼텍스트를 각각 바탕으로 삼은 전통시(전근대시), 근대시, 탈근대시를 거론할 수 있다.2) 이런분류는 음독(낭독) 패러다임에서 묵독 패러다임으로 전환된 근대의 시발점을 축으로 전통적인 시와 근대시의 간격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 그것은 공동체 의식에 바탕을 둔 전통시의 정형률과 근대적 개인의식에 바탕을 둔 자유시의 내재율이 보여주는 간격이다. 문제는 근대시의 리듬으로서 이 내재율의 성격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내재율은 그 자체의 특성으로보다는 외형률의 부정으로서만 정의되는 부정적 정의의 대상이었기에 그 규정은 미확정적이었다. 하여간 이 리듬의 존재를 완전하게 부정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배후의 유령”으로라도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연구자로서 그것을 증명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시연구자에게 리듬은 늘 성가신 존재였다. 현대시의 리듬으로서 내재율에 대한 접근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질수 있다. 하나는 내재율을 객관적 실체로서 인정하고, 구체적인 현상에서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장철환의 경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3) 그는 정형률과 같은 외형적인 반복을 리듬으로 규정하는 기존의 관점을 비판하고, ‘내적 조직화의 원리’로서, ‘의미-형식의 통합체’로서 리듬을 재규정하면서 구체적인 작품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그는 김소월의 시에서 운(韻, rhyme),율(律, meter), 선율(melody)의 실체를 확인한다. 운을 예로 들면 김소월 시에서 두운, 요운, 각운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형시의 자장 속에 놓인 김소월의 시를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발견이지, 현대시 일반으로 확대할 때 그 한계는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재고의 여지가 있다. 다른 하나는 현대시에서 리듬을 형식적인 차원에서 완전하게 제거하는 방식으로서, 리듬을 완전하게 내면화하는 방식이다. 보들레르가 말한 바 “리듬과 각운이 없으면서도 충분히 음악적이며, 영혼의 서정적 움직임과 상념의 물결침과 의식의 경련에 걸맞을 만큼 충분히 유연하면서 동시에 거칠은 어떤 시적 산문의 기적”4)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철저하게 의미론 혹은 심리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최소한의 형식적 자질조차 거부하는, 일종의 리듬 부정론이라 할수 있다. 리듬을 의미론 혹은 심리학의 차원으로 옮겨놓음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논의의 불가능성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런 논의 역시 한계를 지닌다. 박슬기의 『한국 근대시의 형성과 율의 이념』은 ‘침묵하는 문자’로 영위되는 현대시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율의 이념’이라는 독특한 용어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두 번째 방식에 가깝지만, ‘성률’과 ‘향률’이라는 현상적 차원의 특성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자와 후자의 긴장 관계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큰 그림 속에서 이 논의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박슬기의 논의에서 핵심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율의 이념’은 무엇인가. 먼저 율(律)이란 “시의 음악성인 동시에, 이 음악성을 산출하고자 하는 언어의 지향점”(47쪽)이다. 여기에서의 ‘지향점’은 이후 라바르트, 니체, 아비람 등의 논의를 경과하여, 현대시에서 상실한 리듬을 “계속해서 회복하려는 주체의 강박적 충동”(78쪽)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문자 언어의 흔적 속에서 상실한 기원을 회복하려는 충동의 흐름이 리듬이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이념인가. 그것은 “이 리듬은 언어의 배후에 있지만 언어 그 자체는 아니며, 그러나 언어가 없다면 결코 나타날 수 없는, 언어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념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78쪽)이다. 율의 이념은 텍스트에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리듬과 문자의 리듬 두 가지가있는데, 저자는 이것을 ‘성률(聲律)’과 ‘향률(響律)’로 부른다. 이것은 라쿠 라바르트가 제시한 두 용어, ‘소리의 현상’과 ‘반향의 현상’을 참조한 것으로, ‘성률’은 “언어의 음성적 효과와 그 지각에 근거하여, 낭송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79쪽)되는 것이며, ‘향률’은 “문자의 율이며, 문자의 시공간적 배열에 의거하는 것”(79쪽)이다. ‘율의 이념’은 시적 현상계에 구체적 음악성의 부재와 일종의 지향점으로 존재하는 리듬을 강조함으로써 ‘배후의 유령’으로서의 현대시의 리듬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내고 있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기존 리듬론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20년 초기에 황석우, 김억 등이 외형률의 결여태로 내재율을 지속적으로 호명하면서 현대시의 리듬을 설명하고자 하였으나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경우를 설명하는 데 이 개념은 유효하다. 즉 현대시의 리듬이 일종의 이념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현상적으로 그것을 드러내려는 충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수밖에 없었으며, 또한 그 시도가 늘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저자의 논의에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장점은 개화기와 1920년대의 시론과 시적 결과물들을 하나의 시선으로 설득력 있게 분석하여 그 구체적 의미를 명료하게 하였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리듬 관련 논문들이 여럿 나왔지만 모두 개별적인 의미 파악에 그치고 말아서 전체를 개괄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하지 못하였다. 또한 자기 시각의 독창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앞서서 일부 구절만을 선택하여 전체적인 맥락을 무시하고 일부 주장만을 과장한 혐의가 짙었다. 그러나 저자의 논의는 전체적인 시각을 지니면서도 세부적인 분석도 수행하는 균형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최남선이 신체시, 창가, 민요, 시조, 산문시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보여준 시적 실험들의 목적을 “이미 근대시가 가창의 공동체에서 분리되어 고립된 지면에 놓였을 때, 어떻게 노래의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120쪽)으로 파악한 것이나, “김억의 예술론, 번역론, 언어론을 관류하고 있는 어떤 좌절의 감각”(160쪽)을 해명한 것은 주목할 만한 분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한계 혹은 의문점도 다룰 수 있다. 먼저 추상화와 관련된 한계이다. 이 저서에서는 언어적 차원에서 시학적 차원으로 리듬론의 관점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리듬론을 추상화하였다. 일종의 해체주의적 접근, 부재와 존재의 역설적 관계로서 리듬을 해명하는 것이 이런 추상화의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추상화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율의 이념이 일종의 선험적 차원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추상화는 필연적이고도 자연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추상화가 극점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어떤 타협에 그쳤다는 점이다. 즉 율의 이념이 끝내 현상으로 실현되지 않고 근원적 충동이나 동경으로만 남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선험적 원리로 처리되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하는 점이 저서를 읽으면서 가진 기대였는데, 그것은 끝내 현상적인 차원으로 환원되고 말아 결론이 다소 왜소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성률, 향률이라는 개념이 그런 왜소화의 중심점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형식적 표지(청각적 기표와 마침표와 쉼표 등)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리듬의 이념적 차원으로서의 율의 이념과 다소 거리가 있거나, 율의 이념을 전체적으로 담지 못하는 제한적인 발현으로 보인다. 다음은 사소하지만 주요 논지를 튼튼하게 지탱하기 위해서는 한번쯤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들이다. 먼저 현대시의 속성을 문자의 측면에 너무 국한시켰다는 점이다. 성률이나 향률은 문자 차원의 리듬이지만 문자와 음성언어와의 절대적인 결별을 상정한다면 존재 불가능한 것이다. 저자의 논지에서 언어와 문자가 구분되지 않고 서로 넘나들고 있는 점이 이런 한계를 자인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 때문에 활자 배치상의 행갈이가 지닌 의미가 무시되어, 행갈이가 “음률의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186쪽)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는것이다. 문자 차원에서 볼 때 행갈이의 효과가 더 강조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결론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기본적인 논지와 상충되는 것으로 읽힌다. 사소하지만 시 해석상의 문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김소월 시의 율의 이념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작품으로 상정하고 있는, 김억의 .꿈으로 오는 한 사람.이라는 작품의 해석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난해한 표현, 통사론적 분절 등이 보인다고 하며 이를 통하여 이 시에서 “언술 행위의 주체와 언술의 주체 사이에는 분열이 발생”(220-221쪽)한다고 평가한다. 이는 “김소월 시의 율의 구조는 기표의 흐름으로서의 시간적 연쇄와 이 연쇄적 흐름을 방해하고 종결하는 구조 사이의 반명제적 대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저서의 논지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이 시의 통사론적 분절의 예는 “숨어있던 한 사람이, 언제나 나의,/ 다시 깊은 잠속의 꿈으로 와라”의 ‘한 사람이 … 와라’와 이와 비슷한 문장 ‘그는… 누어라’ 등이다. 저자는 이들 주어에 호응하는 서술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당대에 유행하던 표현으로서, ‘와라’는 ‘오라’와 같은 명령형, 청유형 서술어미가 아니라 ‘온다’, ‘오누나’, ‘오는구나’ 등의 의미로 해석되는 시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당대에 유행하고 있었던 시어체 현재 서술형 종결어미”5)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란점은 전체의 논지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의 것이 아니며 또한 해석의 문제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고의 대상으로서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필자는 서평을 위하여 해당 저서를 읽으면서 현대시의 리듬론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를 얻었다. 또한 우리의 근대 초기 리듬론을 새로운 관점에서 개괄하는 즐거움도 얻을 수 있었다. 필자 역시 현대시를 원론적으로 검토하며 새로운 리듬론을 준비하고 있기에 이 서평쓰기가 매우 즐겁고도 유용한 작업이었음을 밝혀둔다. 앞으로 저자의 시선이 어떤 깊이와 폭을 획득하며 전개될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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