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논문 :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 1862~1936) 묵란화 연구

저작시기 2014.01 |등록일 2015.04.24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28페이지 | 가격 6,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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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수록지정보 : 민족문화논총 / 26권
저자명 : 이인숙 ( In Suk 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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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 1862~1936)는 근대기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한 시서화 삼절의 서화가로 서예와 사군자화 위주의 작품을 1920~30년대에 많이 남겼다. 서병오는 이하응, 민영익과 직접 교유하며 그들의 묵란법에 영향을 받아 개성적인 ‘석재란’을 이루었다. 석재란은 사군자화의 군자적 상징과 서예적 필획 대신 길상성, 시각성이 강해져가던 근대기에 전통적인 의미상징을 충실히 보전하며 다양한 유형의 묵란을 자신만의 필묵미로 표현했다. 서병오의 사군자화관은 김정희의 영향을 받은 사의(寫意) 중심의 문인화론이다. 서병오는 당시의 ‘미술’을 형사(形似)로 규정하며 전통회화의 사의와 차별된다고 하였다. 서병오는 사군자화에 있어서도 미려한 장식성과 시각적조형성이 우세해져가는 시대적 상황에서 높은 인품을 지닌 서예가이자 사군자화가인 청나라 정섭(鄭燮, 1693~1765)을 언급하며 작가의 인품과 서예가사군자화에 필수적임을 강조하였다. 서병오 묵란화의 초기는 1909년(48세)까지로 화보류와 이하응의 영향을 받은 시기이며, 중기는 상해에 장기간 체류하며 민영익과 교유하고 돌아온1910년(49세)부터로 이때부터는 민영익의 건란 난법을 구사하게 된다. 후기는 1922년(61세)부터 작고하기까지로 운미란을 계승한 위에 자신의 고유한 난법과 필묵미가 나타나는 석재란의 시기이다. 석재란의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유형으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서병오는 민영익의 노근란(露根蘭)을 1910년 한국에서 그려 운미란을 국내에 알렸고, 이하응의 영향을 받은 석란(石蘭)과 현애란(懸崖蘭)을 자신의 필묵법으로 개성화하여 그렸다. 석란을 가장 많이 그린 것은 이하응 이후 묵란의 유행이기도 하였지만 불변부동 한 돌의 군자성에 대한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초와 난초가 함께 벗하는 전통적인 군자의 상징을 지란(芝蘭)으로 그렸고, 만년의 무심함 속의 함축적인 필묵미를 분란(盆蘭)으로 보여주었다. 서병오는 난초가 마치 좁고 험한 지형의 골짜기에서 무리지어 자라는 듯 총총히 잇대어 구성한 곡란(谷蘭), 난초 잎을 한 줄로 꿰어 엮은 듯 중첩시키면서 위로 뻗어 올린 난 부케와 같은 인란(□蘭)의 도상을 창안했다. 곡란과 인란은 공자와 굴원으로 소급되는 난초의 역사적 상징성을 묵란의 한 유형으로 구체화한 서병오의 특징적인 도상으로 주목된다.

영어 초록

As a painter of poetry, calligraphic work, and painting, who was mainly active in modern Daegu, Seokjae(石齋) Seo Byeong-oh(徐丙五, 1862~1936) left many expressing an artist`s inner world painting style of ink orchids in 1920`s and 30`s. Seo Byeong-oh considered that the spirit of a painter in Four Gracious Plant Paintings is very important since the dignity of paintings is closely related to the personality of a painter. He thought that calligraphic training is the basic requirement to reveal the spirit of a painter in Four Gracious Plant Paintings. Seo Byeong-oh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calligraphic training in Four Gracious Plant Paintings with the example of Pangyo Jeong-seob, who was a calligrapher and a Four Gracious Plant Painter with great personality. The early stages of Seo Byeong-oh`s ink orchids was by 1909(the age of 48), and he was influenced by Seokpa Yi Ha-eung(1820~1898) and painting manuals. The middle period begins from 1910(the age of 49) after his long trip to Shanghai in China. From this time on, Seo Byeong-oh made a good command of Geonran(建蘭) of Unmi Min Young-ik(1860~1914). The latter part was from 1922(the age of 61) till his death, and, succeeding to ``Unmi Orchid Style(芸楣蘭)``, this is considered to be ``Seokjae Orchid Style(石齋蘭)`` period, which revealed his own unique characteristics with pen and ink. Seo Byeong-oh succeeded to Min Young-ik`s orchid painting techniques and achieved Seokjae Orchids with his own characteristic pen and ink style. Seo Byeong-oh painted various ink orchids such as Nogeunran(露根蘭), orchids with exposed roots, Seokran(石蘭), orchids with rocks, Hyeonaeran(懸崖蘭), orchids with cliff backgrounds, Jiran (芝蘭), orchids with Lingshi mushroom, Bunran(盆蘭), orchids in flowerpot or pot, Gokran(谷蘭), orchids painted as if they are climbing along the valley, Inran(인蘭), orchids painted as if the stems are threaded in one string etc. Especially, Gokran and Inran are Seo Byeong-oh`s characteristic picture images that are faithful to the historic symbols of ink orchids.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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