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학사(中國史學史) 국제학술대회國際學術大會) 특집논문(特輯論文) : 판원란(範文瀾)의 경학(經學)과 사학(史學)

저작시기 2014.01 |등록일 2015.04.24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27페이지 | 가격 6,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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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중국사학회 수록지정보 : 중국사연구 / 93권
저자명 : 저우원지우 ( Wen Jiu Zhou )

없음

한국어 초록

판원란(范文瀾)은 중국에서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사학가 중의 하나이다. 중국 항일전쟁 시기 그는 옌안(延安) 사학계의 대표적 학자였으며, 중공 지도급 인물들이 범문란을 대단히 존중하여 그를 \"판라오(范老)\"라고 지칭했다. 연안 시기 그는 저술한 『중국통사간편(中국通史簡編)』은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쓴 중국통사로, 마오쩌뚱(毛澤東)으로부터 중시되고 높이 평가되었다. 판원란은 베이징대학 국학문(국學問) 출신으로 고문경학(古文經學)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비록 그는 구 학문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 학습하여 마르크스주의를 운용하여 중국 역사를 연구 저술하였으나 경학이 그의 학술에 미친 영향은 여전히 분명하게 보인다. 판원란의 경학 성취 및 그의 사학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는 비단 판원란의 학술 전반에 대해 이해하고 판원란 사학의 특징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전통 학술이 중국 마르크스주의 사학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판원란은 중국 학술이 구학문으로부터 신학문으로 바뀌던 처음 시기의 학자이다. 그는 어려서 유가 경서를 읽었고, 소년기에는 신식 학당에 입학하였으며, 중국에 세워진 고등학부인 대학에 진학하였다. 베이징대학 시기 그는 황간(黃侃), 유사배(劉師培), 진한장(陳漢章) 등 고문경학 스승에게서 배우면서 고문경학을 따랐다. 그의 초기 저작인 『문심조룡강소(文心雕龍講疏)』, 『문심조룡주(文心雕龍注)』, 『군경개론(群經槪論)』 등은 그의 이러한 학술 경향을 보여준다. 『문심조룡강소』와 『문심조룡주』는 모두 황간의 『문심조룡찰기(文心雕龍札記)』의 기초 위에서 완성된 것으로, 황간의 학술 계승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으며, 『문심조룡』 연구 방면에서의 탁월한 성취는 그에게 \"범조룡(范雕龍)\"이란 명예를 얻게 했다. 『군경개론』은 판원란이 경학 전판을 논술한 저작인데, 이 책의 내용은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중의 \"심삼경(十三經)\", 즉 『주역(周易)』, 『상서(尙書)』, 『시(詩)』, 『주례(周禮)』, 『악(樂)』, 『의례(儀禮)』, 『예기(禮記)』, 『춘추(春秋)』 및 3전(傳), 『논어(論語)』, 『효경(孝經)』, 『이아(爾雅)』, 『맹자(孟子)』 등이다. 『군경개론』은 폭넓은 자료 인용이 특징인데, 판원란이 경학사와 제가의 관점을 숙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판원란은 이전 사람들의 관점을 널리 인용하면서도 자신과 다른 관점을 비교할 때는 자신의 견해도 표명하였으므로 \"술이유작(述而有作)\"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에는 적지 않은 절(節)에서 직접 자기 스승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경학파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6개 절에서는 직접 유사배의 문장을 인용하고 아래에 유신숙(劉申叔) 선생의 이름을 적었고, 2개 절에서는 직접 진한장(陳漢章)의 문장을 인용하고 아래에 진백도(陳伯도) 선생이라 이름을 적었다. 책에서 여러 곳에서 \"진선생왈(陳先生曰)\"이라 하고 있는데 이 진선생은 진한장을 가리킨다. 때로는 \"진사백도(陳師伯도)\"라고도 썼다. 1개 절에서는 황간의 문장을 인용하였는데, 곧 제9장의 제24절 \"삼전평의(三傳平議)\"로, 아래에 황계강(黃季剛) 선생이라 이름을 썼다. 책에서 \"황선생왈(黃先生曰)\"이라 한 황선생은 바로 황간을 가리키며, 때로는 \"황사계강(黃師季剛)\"이라고도 썼다. 1개 절에서는 전적으로 장태염(章太炎)의 저술을 소개하였는데, 곧 제9장 제24절로, 제목은 \"장태염춘추좌전독서록후서(章太炎春秋左傳讀敍록后序)\"이다. 이 절을 둔 것은, 한편으로는 그것이 판원란이 보기에 경학에서 중요한 문제였음을 말해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판원란이 스승의 주장에 찬성하여 이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스승의 이름을 쓰지 않은 장절은 모두 판원란 자기 나름의 저술이다. 고문·금문 양가 논쟁에서 판원란은 대부분 고문가의 관점을 스스로 견지하고 있다. 당연히 그는 금문가적 관점에 대해 한결 같이 배척하는 것은 아니고, 피석서(皮錫瑞)의 경학 성과에 대해서 대단히 중시하고 존중하고 있으며, 때로는 피석서의 관점을 전면 소개 하기도 하였다. 피석서의 합리적 관점에 대해서 그 역시 긍정하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금·고문의 대립에서 그는 기본적으로 고문경학을 지지하였다. 그는 고문경학 진영의 일원이었다. 그는 뒤에 \"나는 당시 학문이란 그저 ``호고(好古)``1가 뿐이며 다른 부문은 없다고 깊이 믿었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러므로 일찍이 고문경학가들과 기치를 같이 하면서 \"선학요얼(選學妖蘖)\"을 외쳤다. 그의 『군경개론』을 보면 판원란의 이러한 회고가 진실된 고백이라 할 수 있다. 판원란은 옌안에 도착한 후 유물사관을 배워 적용하였고, 경학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1940년 그는 옌안신철학년회(延安新哲學年會)의 초청을 받아 「중국경학사의 연변(中국經學史的演變)」을 강연했다. 이 원고에서는 중국 경학 연변의 맥락을 거침없이 정리하였는데,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경학의 기본 문제에 대해 서술하였다. 『군경개론』과 비교해 보면 이 강연은 완전히 다른 풍격의 경학사 저작이었다. 『중국경학사의 연변』에는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1. 처음으로 마르크스주의 관점을 이용하여 경학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판원란은 서론에서 경(經)의 본질과 경의 형성, 경학 발전의 규율성 등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이용하여 설명해보겠다고 했다. 2. 비판적 각도에서의 논의이다. 판원란의 이 강연은 마오쩌뚱이 발표한 「신민주주의론(新民主主義論)」의 후속편이다. 「신민주주의론」은 신민주주의 문화에 관한 논술로, 전통문화적 방법론 원칙에 대해 \"고대 문화적 발전 과정을 청산하고, 그 봉건적 잔재를 제거하고 그 민주성이란 정화(精華)를 흡수해야 한다\"고 했다. 마오쩌뚱은 팡원란에게 보낸 서신에서 판원란이 근대적 경학가들(이미 고문경학가이면서 금문경학가이기도 함)에 대해 비판해 주길 희망했다. 이러한 배경은 판원란의 논지 출발점을 \"타파(破)\"에 두게 하였고, 특히 서언이나 근대경학사 및 총결 부분에서 비판적 색채를 상대적으로 문명하게 했다. 3. 심오한 내용을 알기쉽게 설명하고, 빼어난 문장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경학사 일반 차원에서 말하자면 무미건조한 면이 있지만 그의 이 강연은 오히려 매우 생동적인 것이었다. 4. 체계를 정비하고 계통을 명료히 했다. 5. 상세함과 간략함이 적절하고, 간략하면서도 상세함이 있다. 판원란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이용하여 경학 연변 과정에 대해 정리한 것은 지극히 치밀하고, 금·고학파의 협애한 관념을 벗어나 실사구시의 정신을 체현하고 있으며, 경학 연구의 역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강연은 항일전쟁시기의 옌안에서의 저작이기에 시대적 특징을 선명하게 보이고 있는 동시에 시대적 한계를 피하기 어려운 측면도 갖고 있다. 주요 표현은 비판적 각도에서 논의하고 있으면서도 경학이 중국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의를 거침없이 밝히고 있다. 근대 경학가에 대해서는 학술적 비평 대신 정치적 비판을 통해 그들의 부족함을 강조하였다. 1963년, 판원란은 『홍기(紅旗)』 등 단위에서 재차 경학을 강의하였고, 『경학강연록(經學講演록)』을 완성했다. 이 글 역시 심오한 내용을 알기 쉽게 표현하려는 문장의 풍격을 유지하고 있다. 옌안 시기의 『중국경학사의 연변』과 비교해 볼 때, 이 글의 경학에 대한 서술은 그 분위기가 비교적 평온하며, 일부분에서만 심화되고 있다. 주로 1. 작자가 비판적 사고를 벗어나서 이성적 자세로 힘써 경학을 논술하였다. 2. 정치, 경제, 학술 등 종합적 요소에 중점을 두면서 시기별 경학의 특징과 형성 원인을 논술하여 작자의 시야가 개방되고 지식이 넓어졌음을 보여주었다. 3. 이 글은 비교법을 대거 활용하였다. 4. 변증법을 이용하여 경학을 해석하는 변화를 뚜렷이 보였다. 5. 금·고문가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근대 경학가에 대해 공정한 평가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판원란은 경학 방면에서 아주 깊은 소양과 공력을 갖추었으나 주·객관적 원인으로 말미암아 폭넓은 경학사 저술을 온전히 내어 놓지는 못하였다. 이것은 중국학술사의 반전과정에서 말하자면 아주 큰 유감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판원란은 중국통사 저술을 자기 필생의 학술적 추구로 삼았던 명실상부하게 \"통사가풍(通史家風)\" 사학가였다. 판원란 초년기의 국학 훈련과 경학 영역에서의 정진은 그의 사학 활동과 통사 찬술에서도 흔적을 남기게 되었고, 그의 사학에서도 선명한 학술적 개성을 보이게 하였다. 첫째, 경학 소양은 그를 민족적 특징과 마르크스주의와의 결합이란 면에서 두터운 근거를 갖추게 하였다. 둘째, 유가 경서에서의 엄격한 화이 구분은 그로 하여금 역사 서술에서 민족적 기질을 더욱 강조하게 했다. 셋째, 경학가로서의 경향이 경학 서술과 사료관에서 분명히 반영되고 있다. 넷째, 경학 사승 관계는 그의 학풍, 문풍에서 깊은 영향을 미쳤다. 판원란의 중국통사 저술은 옌안판은 물론 신중국 성립 이후의 수정본까지 모두 그의 심오한 경사(經史) 배경을 보여주고 있으며 판원란의 학술 방면의 개성을 뚜렷이 갖고 있는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문화사 부분은 작자의 국학 스승의 성과를 아주 잘 반영하고 있다. 판원란의 중국통사 방면에서의 성취는 중국 전통 학술이 현대 사학에 대해서도 적극적 의의와 귀중한 가치를 가진다는 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영어 초록

Fan Wenlan, a Marxist historian, was quite knowledgeable at Confucianism Classics. He received an education in Sinology Department of Peking University and was greatly influenced by the Old Text Confucianism masters at that time. His early writings -Wen Xin Diao Long Jiang Shu, Wen Xin Diao Long Zhu, Qun Jing Gai Lun-- clearly indicated that he stood in the line of the Old Text Confucianism. He studied and narrated the history of Confucianism Classics by viewpoints of Marxism systematically for two times, which were important milestones in Confucianism Classics history research, trying to get rid of the prejudice against the New Text Confucianism or in favor of the Old Text Confucianism. The first time was in 1940s when he lived in Yanan and the second time was after the establishment of PRC. Writing a perfect general history of China was Fan``s life goal. His work, Concise Edition of General History of China, remained close relationship with his attainments of Confucianism Classics and the training of Old Text Confucianism in his early years, which can be reflected in many aspects, such as ethnic thoughts, historical material thoughts, research characteristics, styles of writing, and so forth. That proves that there being connections between Marxism Historical-research School of China and Confucianism Classics , its coming into being and development did not separate from the body of Chinese traditional cult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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