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학사(中國史學史) 국제학술대회國際學術大會) 특집논문(特輯論文) : 전통 중국인 핵심 가치관의 함의 -曲阜碑刻文獻의 시각에서

저작시기 2014.01 |등록일 2015.04.24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17페이지 | 가격 5,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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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중국사학회 수록지정보 : 중국사연구 / 93권
저자명 : 노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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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曲阜는 孔子의 고향으로서 여러 역대 帝王·賢臣·名士들이 존숭·배알하였으며, 아울러 수많은 碑刻을 남겨놓았다. 그 역사적 폭은 前漢에서 民國 시기에 이르며, 내용도 배알한 공적을 기록하거나 崇學 등을 서사하였다. 이러한 碑文은 전통 중국인의 끊임없는 연속성을 기록하였으며, 초월적 가치의 정신 신앙을 지니고 있다. 역사의식의 관점에서 이러한 碑文을 고찰해 보면, 우리는 “天人合一”이 전통 中國人 歷史理論의 출발점으로, 그 핵심 가치관의 초석임을 발견할 수 있다. 孔子는 天命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는 일찍이 “死生有命,富貴在天”·“獲罪於天,無所禱也”·“畏天命” 등을 말했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天命”은 알 수 있는 것이라 여기고, 이 때문에 “五十而知天命”이라고 말했는데, “知天命”의 주체는 분명 인간 그 자신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자는 “以德配天” 사상을 한걸음 더 발전시켜 人事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아아! 舜이여! 하늘의 차례(曆數)가 그대 몸에 있도다. 진실로 그 中을 잡아라. 사해가 곤궁하면 천록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舜이 “진실로 그 中을 잡도록(允執其中)” 人事에 최선을 다해야 天命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다. 이처럼 天命의 신비적 색채는 점차 약화되었다. 孔子는 君子가 부단히 “修己”하여야만 “知命”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으며, 아래로부터 배우고 위에 다다른다. 나를 알아주는 것은 저 하늘뿐이구나!”라고 하여, 인간 자신이 “德”을 수양하는 데서 “命”을 알고 실현할 수 있다는 사상을 말해 후세에 미친 영향이 매우 컸다. 또한 “天人合一”의 신앙 아래에서만 曲阜碑文 가운데 자주 보이는 “稽古”라는 말의 함의를 진정 이해할 수 있다. “稽古”는 결코 “복古”와 같지 않은데, 이러한 碑文의 대부분은 孔子와 관련되어 있어서 孔子에게 제사할 때 전통 중국인은 쉽사리 孔子의 古今觀과 서로 연관시켰다. 孔子의 古今觀은 복古가 아니다. 우리는 孔子가 말한 “周는 두 시대(夏와 商)를 본받아 찬란하구나, 그 문화(文)여! 나는 周를 르겠다.”라는 문구 속에서 복古의 함의를 읽어내기 매우 어렵다. 이 문구는 단지 공자가 春秋末期라는 시점에 서서, “文”의 기준을 “夏·商·周” 3代 중에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나는 周를 따르겠다.”는 말이 孔子가 “복古”를 주장한 증거로 될 수 없다. “稽古”는 孔子가 3代 및 그 이전의 문화 전통에 대한 계승을 중시했음을 증명할 뿐이다. 孔子는 한편으론 전통을 중시했지만, “시기에 따른 제도의 확립”에도 중점을 두었다. 孔子가 부모를 위해 분묘를 쓸 때 이러한 관념을 반영한 것이다. “修德”은 “天”“人”관계를 잇는 연결 고리로,전통 중국인이 가진 핵심가치관의 본질이다. “德”은 중화민족의 일관된 정신 추구이다. “德”字의 출현은 매우 일러서, 어떤 학자들은 商代 시기에 이미 출현했다고 본다. 예컨대 徐中舒 編著의 『甲骨文字典』· 中國社會科學院考古硏究所 編著의『甲骨文編』에는 모두 “德”字를 수록하였다. 물론 이 시기에 “德”관념이 반드시 형성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즉 周武王이 商을 격파하면서 周나라 사람들은 “天命無常”을 깊이 느꼈고, 德사상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周代의 “德”문화는 윤리학과 도덕철학의 범주를 초보적으로 확립하였던 것이다. 春秋戰國 시기가 되면,儒家는 德의 함의를 道德修養 쪽으로 한층 발전시켜, 德으로써 修身할 것을 더욱 강조하였다. 孔子는 처음으로 德과 인간 자신 수양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논술하였다. 이후 儒學은 孔子의 德論思想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결국,德은 중국 고대 철학의 중요한 범주로서 중화민족의 정신적 지표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曲阜碑刻文獻 가운데 “內在修德”에 대한 중시는 역대 중국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孔子의 德性에 대한 推重과 德性 교육에 대한 요구도 포함하고 있다. 修德은 실천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뿐만 아니라 孔子의 후손과 儒家를 기준으로 한 많은 관리들이 그 德性에 관한 공훈 및 업적 덕분에, 다른 사람에 의해 碑가 세워지고 칭송받았다. 德性文化는 무엇에 근거해 전통 중국인들에게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까? 바꾸어 말해 핵심 가치관의 동력 원천은 과연 무엇일까? 이는 바로 儒家에서 강조하는 “道統”傳承이다. 碑文을 보면, 儒家 道統 의식의 기원은 매우 이르다. 漢代의 『建寧二年史晨前後碑』중에는 이미 이러한 의식이 있다. 魏晉 時期『黃初年間魯孔子廟之碑』에는 魏文帝가 議郞 공선(孔羨)을 책봉해 魯縣의 百戶 宗聖侯로 삼는 일을 기재하였는데, 이는 초기의 道統 傳承이 혈통에 기반을 두고 실현된 것임을 보여준다. 역대 왕조는 공자의 후손을 봉하였는데 이는 일견 문화전통에 대한 국가의 중시를 보여주기 위함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공자의 후손들이 공자의 혈통과 道統을 널리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공자 사상을 실천하는 하나의 모범을 수립하길 희망한 점이다. 唐朝 시기에는 후세의 道統觀이 점차 명확하게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宋代에는『太平興國八年重修연州文宣王廟碑銘』에서 道統과 正統의 변론이 그 당시 주목받는 命題였음을 반영해냈다.『康熙二十五年闕裏至聖先師孔子廟碑』에는 康熙 23년 孔子廟를 배알한 일을 기재하여,康熙가 “政統”·“道統”의 합일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孔子시기를 원점으로 하여 우리는 그 전 시기에 堯·舜·禹·湯·文·武·周公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그 후 시기에 孟子·董仲舒·朱熹과 王陽明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역사에서 역사로 나아가는 道統은 (시간을) 초월하여 변치 않는 특색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소위 “濟古維來”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儒家 학설의 대표성과 전승은 중화민족이 점차 형성한 공통의 사상문화 체계로 孔·孟의 이론에 그치지 않으며, 단순히 그들로 대표되는 儒學 일파만의 사상도 아니다. 요컨대 전통 중국인의 핵심 가치관은 이러한 역사적 기초 위에서 세워진 것이다. 즉 전통 중국인이 “天一合一”을 숭상하고, “內在修德”에 집중하며, “道統傳承”을 존중한 것은 유구한 중화민족에 대한 정신적 지표로서 전통 중국인의 문화 혈통을 형성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지닌다. 이러한 사상 관념은 우리에게 여전히 적극 귀감이 되는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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