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재실의 형성과 입지특성

저작시기 2014.12 |등록일 2015.03.23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33페이지 | 가격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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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수록지정보 : 남도문화연구 / 27권 / 297 ~ 329 페이지
저자명 : 이정

없음

한국어 초록

조선시대는 성리학을 기본이념으로 조상숭배사상이 생활전반을 지배하였으며, 유교적 생활윤리로써 예제의 강 화를 가져왔고 齋室은 주자가례의 실천적 공간으로 종가, 사당, 서원, 향교 등과 함께 유교문화의 큰 틀을 형성 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양반 유교문화를 형성한 제례공간인 재실을 대상으로 주자가례의 문헌적 고찰 을 통한 형성배경과 형성과정을 파악하였고,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중심으로 지역적, 시대적 비교를 통한 재 실공간의 입지특성을 분석하였으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①재실은 일 년에 1~2회씩 문중원이 모여 五代이상 始祖까지의 墓祭를 수행하기 위한 제축공간으로 齋, 齋舍, 齋室이라 칭했으며, 王室에서는 왕실의 廟에 祭를 준비하는 곳으로 齋室, 齋院, 齋宮이라 불렀다. ②형성과정은 고려 말에 도입된 성리학의 영향으로 조선초기까지는 願刹(寺刹)내 願堂형태로 祭와 墓를 함께 관 리하는 불교식 제례행위와 유교식 제축행위가 혼재되었고, 이후 斥佛化정책으로 인해 齋室은 寺刹에서 분리되 어 사대부 墓근처에 齋庵로 변화되다가 朱子家禮가 정착된 조선중기이후 유교적 제축공간으로 집안에서 지내는 祭祀(사당)와 墓에서 지내는 墓祀(재실)로 각각 분리되었다. ③ 조영시기는 조선초기(15~16세기)까지는 타지역에 비해 유교성향이 강하고, 중앙의 중심세력을 형성하였던 경북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재실건립이 활발하기 못하였고, 주자가례 및 정치, 사회, 경제적 요인 등으로 성리 학적 규범의 완화를 보이는 조선중기(17~19세기)이후에 충청도를 위시하여 전라도, 경남 등 타지역에서도 활발 히 건립되었다. ④조영목적으로는 ‘묘제기능’이 전체의 66.0%로 재실의 원기능에 충실히 부합되었으며, 그 외 ‘강학기능’ (21.4%), ‘사당’(5.0%), ‘생가’(3.8%), ‘사찰’(3.1%)등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경북, 충남, 전북은 묘제기능이 강한 반면, 경남, 충북, 전남 등은 재실기능이외에도 강학기능 등을 함께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⑤평면유형은 경북지방은 강한 공간적 폐쇄성과 구심력을 지닌 ‘口字型’ 배치가 나타났으며, 충청남도는 ㄷ자형 의 비중이 높고, 그 외 충북, 경남, 전라남북도 지역에서는 ‘ㅡ字型’, ‘=字型’ 등 주로 개방적인 평면형태가 나타 났다. ⑥재실의 立地는 초기에는 山中에 위치하다가 후기로 갈수록 마을근처에 건립되었으며, 성리학적 규범이 엄격 하게 적용되던 경북지방은 마을과 격리되어 산중이나 마을후면부에 입지 비중이 높은 반면, 사회, 경제적, 기후 적 요인 등으로 인해 성리학적 규범의 완화를 보이는 경남을 위시하여 개방적, 실천적 학문성향을 중시하던 기 호학파의 충청도, 전라도지역에서는 마을중앙이나 주변 등 주거지와 인접하여 입지하는 경향이 높게 나타났다. 이상을 종합하면 재실은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에 따라 형성되었으며 성리학과 깊은 관련성을 지니고 주자가례 에 따른 실천기구로써 향촌 양반계층의 사상적, 학문적 성향과 경제력, 기후, 지역적의 차이에 따라 조영목적, 조영시기, 평면배치, 주거지와의 관계 등 입지특성의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영어 초록

The basic principle for ancestor worship in the Joseon Dynasty was dominated by Neo-Confucianism (性理學 ). Jaesi l (齋室) was built as a place to perform the sacrificial of their ancestors. It is functional for lodging and catered food, eumbok (飮福), mangje (望祭), etc., for the person attending the memorial service. Therefore, Jaesil which was a product of the gentry class in the Joseon Dynasty was the architecture for ancestor worship. This study was about the formation and location characteristics of Jaesil in the Joseon Dynasty based on the analysis of 146 Jaesils of three regions: Chungcheong-do, Jeolla-do and Gyeongsang-do in Korea. The main results are as follows:1. Jaesil also called as Jae (齋) or Jaesa (齋舍) was built to perform the sacrificial ceremony for their ancestors and to keep their cemetery safe once or twice a year. Jaesil was named Jaewon (齋院) or Jaegoong (齋宮) where the royal ceremony was prepared. 2. The background of Jaesil formation was to form a jechuk organization (廟). Jaesil offered space for a cemetery memorial to the ancestor for more than five generations. A shrine was a place in a residential space. It was used to perform the ceremony for the family ancestry within four generations only. 3. The formation process of Jaesil was as follows: initially, the Buddhist way of the late Goryeo Dynasty and the Confucian way of the early Joseon Dynasty were mixed together. So, the memorial ceremony and cemetery management were performed as a form of Wondang (願堂) in temple area. Then, Jaesil was separated from the temple area and was located near the cemetery of the gentry house area as Jaeam (齋庵 ) due to the Buddhists rejecting the policy. Later it became separated again as the ceremony-in-house and the ceremony-at-cemetery after the Mid-Joseon Dynasty when the Confucian way was set. 4. Jaesil construction was not active in the early Joseon Dynasty. But the construction was active at Gyeongsangbuk-do where Confucian culture and the political power were stronger from the late 16th to the 17th century. It was spread into some areas of Chungcheong-do. Later it was spread into Gyeongsangnam -do and Cholla-do where the ceremony was set for the intelligent class as well as for the ordinary rank class after the 18th century for socio-economic reasons. 5. 73% of Jaesils were located in the north, northeast, and northwest of the cemeteries. Confucianism ordered that the cemetery be located at a higher elevation. It was assumed that they also considered the function for residences as well as ceremonial because 76% of them were southward. 6. The layout of the Jaesil plan at Gyeongsangbuk-do was "rectangular”. This had a strong sense of being closed and centerdness in the 17th and 18th century. The layout of other regions like Gyeongsangnam-do, Chungcheong-do and Cholla-do were "ㅡ type" and "=type" which had a sense of openness. 7. The location of Jaesil was changed from mountains to near a village. However its location at Gyeongsangbuk-do in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was separated from residential areas because of rigid Confucian discipline. After the 18th century, its location at Chungcheong-do and Cholla-do including Gyeongsangnam-do was close to the village because of the mitigation of Confucian discipline due to socio -economic rea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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