菊圃 姜樸과 白蓮詩社의 한시 연구

최초 등록일
2015.03.22
최종 저작일
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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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동아시아고대학회 수록지정보 : 동아시아고대학 / 32권 / 69 ~ 104 페이지
저자명 : 맹영일

한국어 초록

조선후기의 영조‧정조‧순조 시대는 각 색목과 기술직 중인, 서얼, 여류 시인들이 집단을 형성하여 문화활동을 활발히 전개한 시기로, 그 우호적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고금의 사적을 담론함으로써 詩事를 논하는 기능을 수반하였다. 18C 시기 남인의 대표적인 시인이었던 菊圃 姜樸(1690~1742)도 여러 차례 시사를 결성하여 시창 작을 하였다. 국포의 문학연구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시사는 ‘白蓮詩社’와 ‘西泉梅花詩社’이다. 두 시사는 시 기적 차이뿐만 아니라, 참여한 인물에도 차이가 있다. 백련시사는 국포를 비롯한 남인 문외파 계열의 핵심인 물이었지만, 서천매화시사는 대부분 소론계 인물들이었다. 백련시사는 문외파 남인들인 국포 강박, 신절재 이 인복, 모헌 강필신, 청담 이중환, 약산 오광운에 의해 결성되었다. 경종의 즉위 후 희망과는 달리 정치적 입지 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들은 시사를 통해 정치적 불안감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백련시사는 ‘정치적 실 의와 좌절’을 극복하여 ‘새롭게 바꾸고자 했던’ 노력의 과정이었다. 백련시사의 시 경향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시에서는 정치적 의견을 같이하는, 자신과 뜻을 같 이하는 지우에 대한 강조, 論詩와 시창작을 통한 學詩의 방법, 불확실한 현실을 탈피하여 은거하고자 하는 의 지 등이다. 백련시사에서 창작된 작품의 핵심중 하나는 지우에 대한 강조였다. 자신들이 처했던 정치적 위기 에 자신들의 단결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경종의 즉위로 인해 정치적 재기를 꿈꾸었으나 쉽지 않 았던 당대의 현실로 인해 자신을 알아주는 지우의 존재가 필요했으며, 백련시사는 지우를 만나서 돈독한 관계 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결사체였다. 백련시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시를 공부하는 일이었다. 시에 대한 이론적 공부와 함께 시창작이 이루어졌다. 이들은 옛 사람의 시를 차운하고, 서로 운자를 내며 화답하여 시를 지었다. 또 경치, 역사적 사실 등을 소재로 시를 창작하였는데, 이는 모두 시를 공부하는 방법이었다. 백 련시사 이전 시기에 정치적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이들은 순탄치 않은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였고, 이 를 시로 표현하였다. 국포는 시사활동을 통해 자신의 문학론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시를 창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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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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