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의 역사인식과 역사교육 -쇼와사 논쟁과 교과서 검정을 중심으로-

저작시기 2011.03 |등록일 2015.03.22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28페이지 | 가격 6,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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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민족운동사학회 수록지정보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 66권 / 363 ~ 390 페이지
저자명 : 임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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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전후 일본의 역사인식과 역사교육 -쇼와사 논쟁과 교과서 검정을 중심으로- 임성모 이 글은 전후 일본 최초의 역사인식 논쟁인 쇼와사 논쟁과 교과서 검정을 재검토함으로써 오늘날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진행 중인 역사인식 논쟁의 역사적 배경을 밝히고 역사교육의 장에서 동아시아 지역사가 맹아적인 형태로 제기되었음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쇼와사 논쟁은 1950년대 자민당의 결성과 기시 노부스케 내각의 등장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보수 지배체제 확립과 맞물려서 전개되었다. 논쟁은 체제 비판적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계의 대응인 근현대사 개설서 쇼와사의 역사서술에 대한 비판과 반비판의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그 쟁점은 역사서술에서의 인간 묘사, 실감의 구현이라는 기술적 문제에서부터 구조와 개인, 개인과 계급의 관계와 같은 인식론적 차원의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걸쳐 있었다. 이 글에서는 쇼와사 논쟁의 쟁점은 물론 그 배경과 구도를 정리하는 한편, 논쟁의 양측 모두가 결여하고 있었던 시각, 즉 ‘아시아 속의 일본’이라는 시선의 문제를 뒤늦은 전쟁책임 논의와 연관시켜서 조명하였다. 패전 이후 ‘전후 역사학’이라는 이름의 진보 세력이 담론의 주도권을 행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역사적 배경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글은 ‘이에나가 소송’으로 상징되는 교과서 검정 비판의 움직임과 관련하여 역사교육의 장에서 ‘아시아 속의 일본’이라는 시선이 일정하게 맹아적인 형태로 형성되고 있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일부 역사가들에 국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사 교과서 집필을 둘러싸고 역사교육에서 일본 보수정치의 국가주의와 자민족 중심주의를 비판하고자 하였던 시도는 동아시아 지역사의 재구성이라는 방향성을 선구적으로 제기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이러한 시도가 쇼와사 논쟁의 맹점을 발전적으로 지양할 가능성을 갖고 있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측면들을 검토함으로써 1950~1960년대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한 일본 지성계의 문제점과 가능성을 동시에 조명하여 현재진행중인 역사인식 논쟁의 뿌리를 확인하고 역사인식의 비판적 재구성을 위한 시사점을 찾아보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영어 초록

Historic Consciousness and History Education in Postwar Japan: focused on the Showashi controversy and the certification of textbooks Yim, Sung-mo “Showashi controversy” in 1955 was the first dispute in post-war Japanese history academia. And the controversy affected various issues around history education in Japan, especially about the case of Ienaga trial on the history text book. This article reviews the context of contemporary disputes around history books through the investigation about this controversy and trial. The controversy occurred in the establishment of conservative political system, against the historiography of Japanese Marxist history academia. The issues of the controversy were the account of human, the relationship between structure and individual, between individual and class etc. But Marxist history academia failed to put out any productive results about historic recognition. It is a basic reason that its revived in the contemporary disputes. Also there was a lack of gaze upon ‘Japan in Asia’ associated with the war responsibility on both sides of controversy. In this article, I illuminated the lack of their gaze upon ‘Japan in Asia’ associated with the war responsibility in arranging the issues of the controversy. And I paid attention to a germinal movement of critics on the nationalism and the reformation of East Asian regional history in the arena of history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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