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世日朝關係における前期受職人とその變遷

저작시기 2009.10 |등록일 2015.03.18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37페이지 | 가격 8,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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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전북사학회 수록지정보 : 전북사학 / 35권 / 281 ~ 317 페이지
저자명 : 松尾弘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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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중세 일조관계에 있어서는 다양하고 많은 일본인이 조선왕조와 통교하였다. 이 중에서 조선에 향화한 왜구의 首魁에게는 관직이 제수되었고, 「수직왜인」이라고 불렀던 조선통교자의 한 유형이 출현했다. 필자는 이전에 조선초기의 수직왜인을 「전기수직인」 壹岐 왜구인 藤九郞의 수직이후의 수직왜인을 「후기수직인」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전기수직인의 성격과 그 종언, 후기수직인의 출현요인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이를 고찰하였다. 또 후기수직인 중에서 예외적인 사례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추어, 수직왜인의 성격이 어떻게 변질했는가에 대해서도 고찰하였다. 조선초기의 수직왜인은 왜구계 수직왜인ㆍ기술계 수직왜인ㆍ平道全의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그 대부분은 수직 본래의 목적인 왜구회유책에 의해 출현한 왜구계 수직인이었고, 일본 기술의 도입을 목적으로 했던 기술계 수직왜인과, 對馬와의 교섭 창구로써 수직했던 平道全은 명확히 성격이 다르다. 己亥東征[대마도정벌] 이후, 왜구계 수직왜인의 수직관행은 단절되었다. 이 조선 측의 요인으로는, 왜구가 점차 감소함에 따라 왜구를 철저히 단속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 점과, 平道全ㆍ表思溫의 불법행위에 의해 대마도에 대한 불신감이 증대되었던 점을 고려할 수 있다. 한편, 대마 측의 요인으로는, 1410년대에 추진되었던 왜구의 무역상인화 및 수직왜인의 대우가 감소함에 따른 수직요구의 消失을 들 수 있다. 세종 후기에 수직한 藤九郞이 향화 후에 귀국해서, 수직 권익을 기초로 조선과 무역을 행하게 되자, 다시 일본인에 대한 수직 관행이 부활하였다. 이 시기의 수직왜인은, 일본에 거주하면서 조선과 교역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던 「수직인통교자」가 대부분이었다. 또 이 시기에 조선에 향화했던 수직왜인도, 그 향화의 목적은 조선과의 교역에 있었다. 결국 왜구회유책을 단서로 하여 태조~태종기에 수직한 「전기수직인」과, 세종후기 이후 조선과의 교역을 위한 통교권으로써 수직을 요구했던 「후기수직인」은 명확히 성격이 다른 조선통교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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