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원한, 노스탤지어, 과학-월남 지식인들과 1960년대 북한학지(學知)의 성립 사정-

저작시기 2014.01 |등록일 2015.01.06 | 최종수정일 2015.04.23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40페이지 | 가격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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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수록지정보 : 사이間SAI / 17권
저자명 : 장세진 ( Sei Jin Ch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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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이 논문은 남한에서 북한연구가 제도적으로 성립되는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1960년대 월남 지식인들의 북한 재현 텍스트에 주목했다· 분석 결과 이 논문에서 밝혀낸 것은 첫째, 월남 지식인 집단이 이 시기에 이르러 분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의 와중에 월남한 일세대 월남 지식인 그룹, 1960년대 간첩 임무를 띠고 남한에 파견되었다 ‘전향’한 소위 귀순자 그룹의 분화는 중요하다· 그들은 북한연구라는 필드의 창시자(founding-father) 역할을 수행한 핵심 주체들이었고 서로 긴밀한 협업 관계를 유지했다· 둘째, 지식과 권력 사이의 충돌과 긴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북한연구의 성립은 1960년대 북한의 비약적인 경제적 성과와 4·19 직후 번성했던 통일 담론에 대처하려는 남한 통치 권력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셋째, 이 시기 북한연구는 대중적인 ‘노스탤지어’의 정서를 ‘지식’, ‘과학’에 대한 요청으로 대체했다· 1960년대 북한은 그리운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아니라 남한과는 매우 이질적인 체제, 따라서 ‘연구’와 ‘지식’이 필요한 대상으로 빠르게 전환된다· 김준엽이 이끄는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는 북한연구의 거점으로 부상한다· 또한 1960년대 남한의 북한 연구는 동시대 미국의 지역연구를 모델로 삼았고, 일본은 북한에 관한 지식 성립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루트가 되었다· 넷째, 비록 소수였지만 북한연구가 제도화되는 과정에 기여한 주류 담론과 미묘한 긴장 관계를 이루는 예외적 담론들이 존재했다· 주로 문학적 재현을 전담으로 하는 소수의 이북 출신 문인들은 남과 북 어디에도 환원되지 않는 경계인의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영어 초록

This paper focuses on representations on North Korea which were written by defector-intellectuals from the year 1960 in order to illustrate the institutionally established conditions surrounding North Korea research in South Korean societies· The results of the research show that the group of defector- intellectuals who arrived at that time can be separated into two categories: those from the first generation of Korean War defectors and the so-called “converted” North Korean defector group, the members of which were dispatched to the South after being charged with conducting a spy mission in 1960· These two groups consisted of the principal agents who established the existing domain of North Korean research· They also maintained a close, cooperative relationship with one another· Although there existed tensions and differences of perspective between intellectuals and authorities, the establishment of North Korean research is aligned with the concerns and interests of South Korean governing authorities who are charged with the necessity of balancing North Korea`s economic fallout of 1960 as well as the ongoing discourse around unification, which was introduced after the April revolution· In the years following 1960, North Korean research falsely met the people`s need for nostalgia, or longing for the past, with claims of knowledge and science· The emergence of Korea University`s Asiatic Research Institute, led by Kim Jun-yeop, marked the beginning of this process· Additionally, area studies of the same time period conducted in the United States became the model for South Korean research on North Korea in 1960, while Japan established itself as another node in the North Korea research field· Finally, there existed a minority of intellectuals whose discourses contradicted the mainstream and resulted in subtly tense relations among scholars that contributed to the process of institutionalization of North Korean research in South Korea· This minority of writers who had been from North Korea produced exceptional representations on North Korea· They showed the imagination of marginal peoples who would refuse to choose both North and S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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