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논문 : 파월 특파원 수기를 통해 본 한국의 베트남전쟁

최초 등록일
2015.01.05
최종 저작일
20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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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문학연구학회 수록지정보 : 현대문학의 연구 / 54권
저자명 : 김주현 ( Ju Hyeon Kim )

한국어 초록

월남전 참전기 동안 주월 특파원의 월남전 보도는 1960년대 한국의 민족주의적 열정과 분리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1960년대의 주류 담론이었던 민족주의는 2차 대전 후 신생 독립국이 흔히 그랬듯이 민족주의적 근대화론을 주창했는데,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민족주의(민족적 민주주의) 또한 유사한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자주 대신 빈곤 탈피를 핵심으로 내걸었고, 월남전은 적시에 만난 기회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논문은 파월 당시 특파원 수기에 내재된 민족주의가 월남 민족주의로 대변된 아시아내셔널리즘에 맞서 월남전을 ‘한국화’하는 양상에 주목했다. 특파원들이 조우한 월남 민족주의는 뚜렷한 특징이 있었다. 먼저 월남인들은 특유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참전 명분론이 된 한월 운명공동체론의 허구성을 폭로하며 아시아내셔널리즘의 이상 중에서 ‘지배로부터의 자유’(반외세)를 표방했다. 또한 초강대국 미국의 물량 공세에 맞서 강력한 게릴라전을 지휘한 호치민의 지도력도 역설적으로 월남 민족주의를 드러내었다. 이러한 월남 민족주의에 맞서 민족적 민족주의는 한국군의 독특한 전략으로 실험되었다. 주로 ‘전략촌’(戰略村)과 ‘신생활촌’(新生活村)을 통해 월남인의 ‘신뢰’를 얻으려했던 작전은 한국군을 월남인의 지도자로 자리 매겼다. 특히 무례한 미군과 달리 ‘예의바른’ 한국군들은 태권도를 이용한 반공 교육, 농촌 근대화 사업을 통해 한국군의 공격성을 중화시키고, 한민족(韓民族) 신화를 만드는 주역으로 언론에 소개되었다. 또 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월남전 당시 한국군의 활동을 환기시키는 부분이 많은 점에서 월남에서 실험된 민족주의의 국내 확장판으로 볼 수 있다. 참전에 따른 경제 효과는 또한 처음부터 파월 담론의 핵심이었다. 1968년에 이미 휴전 이후 월남 복구사업 참여가 거론되는 등, 월남전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돈이 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쟁에 대한 감수성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월남전을 태평양-한국전쟁과 단절된 새로운 국민 국가적 무의식을 낳은 전환점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영어 초록

The report of correspondent sent to Vietnam during the Vietnam war has an aspect which can`t be separated from the passion of Korean nationalism. As many newly independent nation often did so after World War II, nationalism as mainstream discussion in 1960s advocated theory of nationalism modernization, it shared similar aspect with nationalism of the Park regime of 1960s. But the Park regime presented new slogan of escaping from poverty instead of self-reliance, the Vietnam war was the opportunity just on time. From this point of view, this thesis focused on the aspect that nationalism inherent in report of correspondent sent to Vietnam against Asian nationalism represented to Vietnam nationalism makes the Vietnam war ``Koreanize``. Vietnam nationalism which correspondents encountered has distinct features. First, disclosing the fictiveness of theory of sharing common destiny between Korean-Vietnam, Vietnamese claimed ``freedom from domination`` (antiforeign) of the ideology of Asian nationalism with their unique uncooperative attitude. Also the leadership of Ho Chi Minh who commended strong guerilla war fighting against material superiority of superpower, USA revealed Vietnam nationalism paradoxically. Against this Vietnamese nationalism, ethnic nationalism was experimented by unique tactic of Korean amy. With the strategy to intend to gain ``belief`` of Vietnamese through ``strategic hamlet`` and ``new life hamlet`` Korean emerged to the leader of Vietnamese. On the contrary to rude American soldier, ``polite`` Korean army were introduced to Korea as they neutralize anti-communism education by Taekwondo, aggressive character by agricultural community modernization business to be leading character who create the myth of Korean race. We can regard Saemaeul Move ment in 1970s as the domestic version of nationalism expansion that was experimented in Vietnam for the part which reminds the activity of Korean army at the time of Vietnam war. Also economic effect according to joining to war was main discussion from the beginning. That`s because Vietnam war would be ``the war which can money`` while joining to Vietnam rebuild project after armistice was already mentioned in 1968. So we need to research the Vietnam war as turning point which produced national unconscious disconnected to Pacific-Korean war from the aspect of changes in suscepti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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