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세기 교회의 비판을 통해 본 마상창시합의 실상

저작시기 2014.01 |등록일 2014.12.30 | 최종수정일 2015.04.23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33페이지 | 가격 6,800원
다운로드
장바구니관심자료
상세신규 배너

* 본 문서는 배포용으로 복사 및 편집이 불가합니다.

서지정보

발행기관 : 한국서양중세사학회 수록지정보 : 서양중세사연구 / 34권
저자명 : 유희수 ( Hee Soo Lew )

없음

한국어 초록

마상창시합에 대한 로마 교회의 태도는 집단난투에서 개별대결로 시합 형태의 진화를 반영했다. 12세기 교회는 인명 살상뿐 아니라 몸값이며 말이며 무기의 거래를 이유로 집단난투를 “가증스런 시장”이라고 낙인찍었다. 개별대결의 등장과 함께 인명 살상의 위험이 줄어든 13세기에는 시합에 대해 관용을 보이기 시작했다. 14세기 들어서는 개별대결의 수적 압도와 십자군 열기의 퇴조로 말미암아 시합에 대해 무관심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시합 형태의 이러한 진화는 교회의 비판보다는 1200년을 전후한 시기 프랑스 귀족 사회의 구조적 변동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영어 초록

The attitude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toward the tournament reflected the evolution of its form from the melee to the joust. In the twelfth century the Church stigmatized the melee as a detestable fair because there were lots of not only the death of men but also the trade of ransoms and horses and arms. From the thirteenth century the Church began to reveal signs of tolerance toward the joust in which players experienced the decreasing possibility to be wounded and die. From the fourteenth century the tournament was changed into the object of indifference owing to the numerical preponderance of joust and the ultimate eclipse of crusade passions. However, it is thought that the fundamental factor to result in the evolution consisted less in the ecclesiastical criticisms than in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French nobility around the year 1200.

참고 자료

없음
  • 구매평가(0)
  • 구매문의(0)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4. 지식포인트 보유 시 지식포인트가 차감되며
         미보유 시 아이디당 1일 3회만 제공됩니다.

      찾던 자료가 아닌가요?아래 자료들 중 찾던 자료가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상세하단 배너
      우수 콘텐츠 서비스 품질인증 획득
      최근 본 자료더보기
      상세우측 배너
      상세우측 배너
      12∼13세기 교회의 비판을 통해 본 마상창시합의 실상
      페이지
      만족도 조사

      페이지 사용에 불편하신 점이 있으십니까?

      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