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리유적을 통해 본 백제말기 익산경영

저작시기 2013.01 |등록일 2014.10.29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25페이지 | 가격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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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수록지정보 : 마한백제문화 / 22권
저자명 : 이신효 ( Lee Shin Hy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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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백제말기 익산경영과 관련하여 천도(遷都)와 별도(別都)중 하나만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유적과 기록, 유물을 통해 익산천도 사실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도가 아닌 별도로 파악하는 경향 이 있었다. 이 글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왕궁리유적이 왕궁으로 운영되던 시기에는 익산천도가 이루어 졌으며, 사찰로 변한 후에는 별도로서 역할을 하였다고 보았다. 왕궁과 사찰, 산성, 왕릉 등 백제의 중요유적이 익산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익산천도를 확인할 수 있으며, 익산 천도가 기록된「관세음응험기」의 정확성은 제석사지와 제석사지 폐기 장의 발굴조사를 통해 입증 되었다. 익산 천도는 인정하지만 완전한 천도가 아닌 별도로 생각하는 의견도 있으나 당시 부여가 백제 의 수도가 아니라는 사실은 익산 천도의 완전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왕궁리유적은 치밀한 계획에 의한 공간분할과 건물의 배치, 당시 최고 신분에서만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유물을 통해 백제시대의 왕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익산경영 시기는 대체로 무왕대로 생각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법왕이나 위덕왕대로 올려보려는 의견도 있으며, 무왕 말기에는 다시 부여로 돌아갔을 것으로 보인다. 무왕이 익산쌍릉에 묻히게 되자 왕궁리유적은 무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로 변하게 되고 의자왕이 무왕 능을 참배 과정에는 익산에서 숙박했을 것이다. 의자왕이 익산에 머물 수 있는 곳은 전에 왕궁으로 사용되었으며, 그가 살았던 왕궁리유적이 가장 적합한 곳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익산은 별도로 역할을 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영어 초록

Despite evidences of relics, records and remains showing that the capital was transferred to Iksan during the latter part of Baekje Kingdom, Iksan has been simply regarded as Baekje``s another capital because there was only one option left to choose between the transferred and another capital. Different from the hitherto perspective, however, this paper adopts the view that the transfer of the capital to Iksan had been definitely the case when Wanggung-ri relics served as the royal palace and that, right after change of the palace to a Buddhist temple, Iksan became another capital. The transfer of the capital to Iksan could be confirmed, first of all, by the fact that significant relics of Baekje Kingdom including those of the royal palace, Buddhist temples, mountain fortress walls, royal tombs, etc. have been found scattered around Iksan. The excavation of the sites of Jeseoksa Temple and graveyard of Jeseok``s relics has proven that the records contained in the Collection of Experiencing Avalokitesvara``s Miracles (觀世音應驗記) are true. Some claim that the capital was moved to Iksan not as the official but just as another capital. But it was the official transfer of the capital for sure considering that Buyeo was not the then capital of Baekje. There is another vital evidence proving that Wanggung-ri relics are those of the royal palace of Baekje as seen from, for instance, partition of space as well as arrangement of buildings realized by elaborate plans and the relics presumed to have been those used exclusively by the highest class of the society back then. It has been a common belief that the period of administration in Iksan was aboutthe era of King Mu``s reign, while there are opinions recently asserting that it was somewhat earlier in the period of King Beop or King Wuideok. It is also believed that the capital returned to Buyeo later during the latter part of the reign by King Mu. After King Mu was buried in the Twin Tombs in Iksan, the Wanggung-ri relics were changed to the shrine to pay tribute to the dead king. While visiting the shrine, King Euija must have had to stay for one night in Iksan. No other place might have been fit for his stop overnight than the place like Wanggung-ri relics where he once lived in. In this context, Iksan must have played an extraordinary role.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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